우여곡절 끝에 배를 띄웠다
우리도 강건너는 도라이들 프로젝트에 투자할 시간이 많아져 구체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학기 중엔 어떠했는지 되돌아봤을 때, 페트병을 수거할 수 있는 시간은 밤 12시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었다. 수거하는 시간이 새벽이 넘어가면 내일 각자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저녁에는 이제 막 배달 된 음식을 먹고 있어 수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자기 전 30분 야간 산책 겸 페트병을 수거하러 다니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방학에는 같이 강 건너 자고 꼬시고 싶었던 내 친구들만 집에 가는 것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가로 돌아갔다. 게다가 방학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계절학기만 끝나면 또 본가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있기에, 우리가 페트병을 모을 적합한 시간은 계절학기가 있는 3주밖에 없고, 원래 학생 수도 적은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 수도 매우 적어서 하루에 20개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다. 학기 중에는 그렇게 많았던 페트병이 구하기 어렵다니, 우리가 직접 배달을 시켜 먹어서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큰 검정 쓰레기봉투를 하나 사고 학교의 모든 건물을 돌며 쓰레기 통에 있는 페트병을 다시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검정 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는 야밤의 도둑같이 매 건물 모든 층의 쓰레기통을 뒤졌다. 또, 균일한 배열을 위해서 콜라와 사이다 병만 모았고, 다르게 생긴 페트병은 수거하지 않았다. 하루에 많이 모으면 20개 정도였고, 적은 날은 10개도 모으지 못한 날도 있었다. 또한 모아둔 페트병을 어떻게 보관할지도 문제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나의 기숙사 베란다에 보관했는데, 아무리 씻어서 보관을 하더라도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같이 거주하는 룸메이트에게 미안해서 다른 마땅한 장소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기숙사자치회로 활동하는 친구가 기숙사자치회용 창고가 있는데, 방학에는 사용하지도 않을 거고 잠깐 거기다가 보관하자고 해서 창고에 보관할 수 있었다. 학기 중에 생각했었던 하루에 100개의 페트병을 일주일만 모으면 엄청 큰 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직접 여러 현실과 변수를 마주하게 되니 3주 동안 모았던 페트병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220개 정도였다.
또 하나의 고민은 어떻게 배를 만들 것인가였다. 바닥은 얼마나 크게 만들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 건지, 페트병과 페트병은 어떻게 이을 것인지 고민을 했다. 만약 우리가 테이프로 페트병을 잇는다면 그것은 쓰레기를 다시 엄청 큰 쓰레기로 만드는 것이 될 것 같아서 우리의 창단 본질인 쓰레기도 재활용될 수 있다에서 조금 벗어나 재활용되지 않는 물건을 만드는 것 같았다. 따라서 추후 재활용까지 고려해서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방법은 쉬운 방법인 테이프로 둘둘 감아서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노끈으로 하나씩 이어서 묶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끈으로 묶게 된다면 나중에 분리할 때도 칼로 잘라서 쉽게 분리수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두 시간이면 다 만들겠지 했던 계획은 밤을 꼬박 세웠다. 먼저 공용 동아리방을 빌려서 지금까지 모아 온 페트병을 다 쏟아부었다.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220개로는 우리가 생각했던 크기의 배는 만들지 못할 것 같았다. 3명이 충분히 넓게 탈 수 있는 거대 크루즈를 만들고 싶었지만, 두 명이 간신히 탈 수 있는 크기의 팔걸이가 있는 정도의 크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노끈으로 하나 하나 묶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는 피자를 포장하는 끈을 주문했는데, 동그랗고 매끈한 페트병 표면에서 미끌미끌 움직였기 때문에 단단하게 고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밑바닥은 페트병 사이의 구멍을 통해 물이 다 들어오는 구조로 밖에 만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저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동력장치인 노는 원재료 부족으로 만들지 못했다. 밤을 꼬박 새운 새벽 5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를 보고 있자니 뿌듯한 마음과, 한숨 자고 바로 띄울 생각을 하니 흥미진진한 마음과 함께 가슴속 뭔가가 벅차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생각으로 시작해 미친 생각으로 끝난 것 같다. 배를 어떻게 강으로 옮길 까 고민을 하던 중, 경주에 살고 있는 친구 집의 트럭을 가져올까, 스타렉스 같은 거대한 차를 빌릴까, 용달을 불러야 하나? 셋이 자전거를 타고 어깨에 메고 가야 할까 생각하던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배가 들어갈 정도의 큰 차량이 없기에 빌릴 수 있는 승용차 위에 배를 올리고, 창문을 열고 끈을 몇 바퀴 둘러 뒷좌석 양쪽에서 떨어지지 않게 밑으로 힘을 주며 꽉 잡고 갔다. 나는 울산을 흐르는 태화강에서 우리의 배를 띄우고 싶었지만 긴 시간과 울산의 중심까지 배를 싣고 간다는 모습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혹시나 경찰을 마주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고 가까운 선바위교로 목적지를 정했다. 처음 차가 출발할 때 뒷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되냐고, 이게 맞냐고. 옆에 지나가던 차에서도 창문을 내리며 신기하다고 쳐다보기도 했고, 안에서 끈을 꽉 잡고 가는 우리의 모습도 정말 웃겼다. 20분가량 그렇게 달리고 나서 선바위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우리 배의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함과 동시에 주저앉아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배가 공기 저항에 못 이겨 반으로 접혀버렸다. 배가 반으로 접혀버리는 게 말이 되나? 우리 프로젝트 이대로 끝이 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친구가 반으로 접혀있던 배를 두 손으로 펼치기를 시도했다. 꿈틀꿈틀 뭔가가 움직였다. 노끈의 매듭에서 구부러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매끄러운 페트병 위에서 앞뒤로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노끈이 구조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우리가 테이프로 페트병을 이었으면 한 덩어리로 잘 유지가 되었을 텐데, 끈으로 묶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아 보관과 이동에 편리한 접을 수 있는 컨버터블 배를 만들게 되었다. (사진 추후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