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무모한 것에 도전했을까
옆에는 어린 딸을 데리고 온 아저씨가 흥미롭게 우리의 배를 쳐다보고 있었고, 다른 할아버지는 편견없이 방송국에서 나왔냐고 물어보았다.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우리는 대학교 학생들이라고 소개했다. 호기심 넘치던 할아버지께서는 동구의 바다 일산지까지 나가냐고 물어보셨다. 우리의 배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길이는 2.5m 정도 되는 배를 셋이서 나눠들고 물 위에 띄워놓으니 이게 정말 뜨긴 뜰까, 사람이 타게 되면 가라 앉아버리는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 먼저 발을 올리고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살짝 가라앉았다. 물이 바닥으로 들어왔고, 다 젖어버렸다. 다음은 내차례다. 나도 한 발을 배 안으로 넣고 흔들거리는 배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엉덩이가 차가웠다. 좌우의 균형이 제대로 맞지 않았는지 한쪽으로 살짝 기울었지만, 앉은 자리를 조정하며 균형을 잡았다. 배의 옆을 위로 높게 쌓았는지, 내 팔이 짧은건지 손으로 물을 젓는 자세가 불편했다. 엉성한 자세로 뒤뚱뒤뚱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폭이 넓지 않지만, 강 반대편까지 도착하고 뱃머리를 돌려서 다시 돌아왔다. 10분 간 물위를 동동, 부력과 함께 이뤄진 강건너는 도라이들의 여정의 마무리였다.
끝은 허무했다. 이렇게 끝이야? 이거 건너고 끝이야? 멋있게 넓은 태화강 위를 돌아다닌 것 도 아니고, 바다로 나아가서 로빈슨 크루소 처럼 항해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그저 동네 뒷 하천에서 물이 들어오는 바닥과 노끈으로 묶어진 페트병 뗏목을 10분동안 탔을 뿐이었다. 그래도 뜬다는 것은 확인했잖아,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하지만 다시 차 위에 싣고 도심을 가로질러 태화강이나, 일산지까지 가기엔 용기가 나질 않았다. 혹시나 경찰을 만났을 때, 잘 설명한다면 목적지 까지 에스코트를 받을 수도 있진 않을까?.. 결국 우리는 다시 타고 온 차 위에 배를 싣고 돌아와서 페트병을 보관했던 창고에 완성된 컨버터블 보트를 다시 넣어두었다. 우리가 처음 떠올렸던 강건너는 도라이들의 프로젝트의 끝은 멋있게 마무리를 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여름방학을 끝내는 것인데 뭔지 모르게 뭔가 찝찝했다. 우리가 동네 하천에서 10분동안 배를 탔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가 멋있다고 생각해줄까라는 생각과, 머리속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들이 현실을 마주하며 하나씩 깨지는 과정을 겪으며 찬란한 결과에 대한 믿음도 많이 꺾였던것이 사실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하는 빈도도 줄어들게 되었고, 예상대로 결과는 생각보다 맘에들지는 않았다. 그냥 다음 학기 술자리에서 안주거리가 될 정도이지 않을까? 혹은 취업할때 자기소개서에 소재로 쓰이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지금 그 때로 돌아가서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 이번에는 제대로! 그 때도 떠올렸던 아이디어로 펩시나 코카콜라에 연락을 해서 페트병을 지원받아서 코카콜라 깃발을 달고 도전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의 프로젝트 이후, 울산에는 '기발한 배 콘테스트'가 열렸다. 재활용품으로 만드는 기발한 배 콘테스트인데, 우리가 그 보다 조금 더 빨랐으니, 우리의 기획력과 실행력은 마냥 무모한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주위에서는 우리보고 콘테스트에 나가보라 했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 셋은 나가기를 싫어했다. 이미 한번 해봐서 그런것일까?? 다시 나가야할 이유가 순수한 재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프로젝트는 상금이라는 목표로 바뀌게 되니 흥미가 떨어졌던것 같다. 만약 그 때 1회로 개최되었던 콘테스트에 나갔으면 상금은 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 때 강건너는 도라이들을 하면서 뿌듯하다고 느낀 점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마친 일이었다. 결과가 맘에들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페트병을 모으러 돌아다녔던 기억, 밤을 새며 배를 만드느라 예민해져있던 기억, 몸의 반이 쫄닥 젖어버려 찝찝했던 기억들까지. 우리 셋 모두 취업이나 진학을 위해 강건너는 도라이들이라는 프로젝트를 넣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 때의 추억을 마음속에 넣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어디에도 쓰이지 못한 유용성이 없는 일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것에 도전했던 그 때의 우리는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누가 지금 상황에서 다시 도전해보라고 하면 아무 생각없이 바로 도전할 수 있을까?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많은 이유를 들어 도전을 피하려 하는 것 같다. 페트병은 서울에서 더 쉽고 더 많이 구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라는 타이틀을 활용해서 다른 기업이나 단체에 후원을 구하는 등 더 쉬운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전 난이도는 더 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득이되는지 실이 되는지 점점 따지게 되는 세상에서, 온전히 우리가 재미있어 하는 일에 몰두하고 실행했던 우리 강건너는 도라이들 덕분에 예전에 간직했던 순수한 재미로부터 도전하는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