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는 대리석이 깔린 집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난방비가 많이 들건, 청소가 힘들건 그런 집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자 친구네에 들렀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반짝반짝한 대리석이 깔린 집이었다. 당시로써는 깨끗하다 느꼈을 뿐, 딱히 감흥이 없었던 미자였다. 친구랑 미술 숙제를 하던 도중에 흰 대리석 바닥에 물감을 엎었었다. 친구에게 미안해하며 바닥을 닦아 내는데, 희미한, 아주 희미한 선홍빛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고 지나가기엔 별 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는, 정말이지 억울하게도 희미한 얼룩이었다. 친구는 돌연 역정을 내며 바닥을 제대로 닦으라고 했다. 소리를 질렀고, 욕도 했다. 미자는 평소 친구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에 몹시 당황했지만 자기 잘못이려니 생각하고 연신 미안하다며 바닥을 닦았다. 친구는 팔짱을 끼고 미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닦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얼룩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닦았다.
다음날 학교를 갔더니 미자에게 없던 별명이 생겼다. 청소부 미자. 이름도 촌스러워서 어쩜 그리 별명이 잘 어울리냐며 대리석을 가진 친구와 그녀의 눈칫밥을 먹고사는 아이들이 호들갑이었다. 미자는 물감을 쏟았다는 이유로, 친구 앞에서 친구 방을 청소했다는 이유로,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훗날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헛구역질이 돋는 참으로 길게도 침잠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비가 오면 발라드 음악을 즐겨 듣던 때를 지나, 편의점 우산 매출은 얼마나 올라갈까 하고 생각하는 나이가 됐을 무렵. 미자는 어느 기업 면접장에서 대리석을 가진 친구와 맞닥뜨렸다. 이상하게 반가워, 예전의 쓰린 기억은 잊은 채, 애써 이름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아 ‘얘!’ 하고 불렀다. 대리석을 가진 친구도 면접장 대기실에서 동창을 만난 것이 반갑긴 했는지 활짝 웃었다. 반색하는 것도 잠시, 그들 사이에 불편한 기색이 뭉게뭉게 풍기기 시작했다. 대리석을 가진 친구도 미자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했는지, '아, 너 별명이 있었는데... 아! 아...' 하고 혼자 기억 속을 더듬거리고선 죄책감을 끄집어냈다. 예전엔 미안해, 그땐 내가 철이 없어서. 듣고 싶지 않았던 사과였다. 반가움에 잊고 있던 청소부의 기억이 떠올랐다. 청소부 미자, 촌스러운 미자, 여름이면 찐득한 장판이 깔린 집에 살던 미자. 미자의 표정이 어둑해진 걸 알았는지, 이제는 감정 공감능력이 생겼는지, 대리석을 가진 친구는 어머니를 방패로 삼기 시작했다. 엄마가, 예전에, 가정부, 아줌마에게, 그런 식으로, 화를, 낸 적이 있었던 게, 어린 마음에, 아직도, 우리 엄마는, 나에게, 그런 성질을... 그래그래 하고 어쩌다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면접도 내 말을 하지 못하고 면접관과 다른 경쟁자들의 말을 그래그래 하고 듣기만 해버렸다.
나오는 길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회사 로비에는 대리석이 깔려있었다. 빗물로 젖은 대리석 바닥은 여태껏 떨어졌던 면접들보다 더 미끄러웠고, 결국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한 번 찧었다. 꺅! 쿵! 퇴근시간 북적이는 인파들이 일순 조용해졌고, 내 몸은 다양한 시선들을 주워 담았다. 회전문을 막 통과하려는 대리석을 가진 친구가 나를 돌아보았다. 회전문은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갔고, 그 친구는 썰물에 쓸려나가는 알맹이 없는 조개껍데기처럼 사라졌다. 일어나 보니 구두굽이 부러져 간신히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미자는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어머니께 늘 듣던 잔소리가 기억났다. 여자애가 굽 높은 구두도 신을 줄 알아야지, 맨날 나이키, 아디다스, 어휴. 여자라... 여자‘애’라... 힘겹게 구두 바닥 뒤꿈치를 부여잡고 있는 구두굽을 내려다보았다. 달랑달랑. 주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하철 역 앞에 구두 수선집이 있었다. 습한 장마철에 늘어난 러닝셔츠만 입고 앉아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남루한 인상과는 다르게 태블릿 PC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할머니였다. 나중에 TV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이 갑작스러운 병환에 시달리게 되자, 이 할머니가 남편 어깨너머로 배웠던 기술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수선집이었다. 아무튼 태블릿 PC로 보고 있는 영상이 더 놀라웠는데,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힙합 경쟁 프로그램이었다. 미자는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로 말문을 텄다. 구두굽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구두를 내밀자 늘 해왔던 익숙한 손놀림으로 구두를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애들이 하는 노랫말은 하나도 알아먹진 못하는데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사람들 모습 때문에 이 방송을 본단다. 희한한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세요? 하고 물었다. 글쎄, 뭐 안타깝지. 나는 구두굽이 바닥에 달라붙는 과정을 지켜봤다. 몇 번 툭툭 내려치는 것 같았는데 깔끔하게 구두가 달라붙었다. 그 짝도 뭐 이루고 싶은 게 있는가? 할머니는 손가락 몇 개를 펴 보이며 수선비를 제시했다. 저요? 미자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세었다. 저는... 물에 젖은 천 원짜리들을 내밀었다. 죄송하다고 덧붙이면서. 할머니는 그래, 이루고 싶다는 게 있는 게 젊은 거여, 하곤 미자의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태블릿 PC에 눈을 붙여 놓은 채.
미자는 목이 말랐다. 역내에 있는 편의점을 들렀다. 이 작은 공간에 담배며 생필품이며 과자며 음료수며 잘도 꾸역꾸역 밀어 넣어놨구나, 면접에 붙으면 이런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겠지, 그전에 나는 누가 사주기나 하는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다. 미자는 음료수를 하나 샀다. 어딘가 불평스러운 표정의 알바가 원 플러스 원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음료수 두 개를 들고 나왔다. 다시 역을 올라갔다. 우산도 없는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만신창이인 몸. 구두 수선집을 다시 찾았다. 미자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영문을 몰라하는 할머니를 두고 다시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할머니가 뒤에서 젊은 친구 고맙다고 말했다. 시끄러운 빗소리와 퇴근시간의 짜증 난 경적소리들이 할머니의 말을 파묻었다.
지저분한 인도에는 누더기처럼 붙어있는 껌과 쓰레기들이 보였다. 담배 연기 섞인 침도 있겠지. 빗방울이 거세지고 있었다. 미자는 꼭, 대리석이 깔린 집에서 살자고, 얼룩 없이 깨끗한, 누구 하나 소리치는 사람 없는, 조용하고 차가운 대리석 깔린 집에서 살자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