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나래의 앵글 밖 기록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고-

by 아련나래

나는 얼마 전 역사적 지리적 인류학적으로 그 유명한 총균쇠를 미루고 미루다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1만 3천 년 전의 역사를 사실주의에 입각해 고찰하면서도 복잡한 양가감정이 느껴져 솔직히 읽고 나서 마음이 더 불편하고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고 그래도 한번 내가 느낀 부분을 지금부터 글로 적어보려 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환경적 결정론으로 설명하지만,

그 거시적인 서사 이면에는 정복당하는 원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형용할 수 없는 심리적 붕괴와 실존적 갈등이 숨겨져 있습니다.


단순히 힘의 논리에 밀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어온 세계관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서 겪었을 고통을 몇 가지 측면에서 짚어보겠습니다.


1. 압도적인 기술 격차와 ‘신의 징벌’ 같은 두려움

원주민들에게 스페인 군대의 총과 말, 철제 갑옷은 단순히 진보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가까웠습니다.

-심리적 충격:화약 소리와 번쩍이는 금속 갑옷을 보며 그들은 상대가 인간이 아닌 '신' 혹은 '악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돌과 나무무기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이 느낀 절망감은 단순한 패배감을 넘어선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갈등:"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신들이 우리를 버렸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하며,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2.'균(세균)에 의한 무력감과 세력관의 붕괴

총보다 무서웠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었습니다.

-내적갈등:정복자들은 멀쩡한데 자신들의 가족과 지도자들만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원주민들은 극도의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는 "백인들의 신이 우리 신보다 강하다"는 인식을 강제로 주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심리적 고통: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한다는 무력감, 그리고 마을 전체가 몰살당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느끼는 '생존자의 죄책감'은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3.'쇠'와 문자, 정보의 비대칭이 가져온 혼란

잉카의 아타우알파 황제가 피사로의 함정에 빠진 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경험'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인지적 부조화:문자를 통해 수천 년의 전략을 공유해 온 정복자들과 달리, 구전 전통에 의존했던

주민들은 정복자의 기만술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적 타격:황제가 생포되고 신성시되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민중들은 극심한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졌습니다.

"세상의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감각은 저항 의지마저 꺾어버렸습니다.


4. 생존과 배신 사이의 도덕적 갈등

정복자들은 소수였지만, 원주민 내부의 분열을 교묘히 이용했습니다.

-심리적 갈등:정복자 편에 서서 동족을 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일 때, 그들이 느꼈을 도덕적 고뇌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 내부에 깊은 불신과 상처를 남겼으며,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역사적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총, 균, 쇠-가 설명하는 환경적 요인들은 원주민들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재앙이었으며 자신들의 영토뿐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 신앙,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심리적 거세 과정을 분명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정복은 단순히 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주가 무너져 내리는 종말론적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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