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먼저 배려한다." 그리고 "부모님께는 최선을 다해 효도한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한다." 그리고 "부모님께는 최선을 다해 효도한다."
나의 인생을 지탱해 온 이 두 가지 모토는 한때 나의 긍지이자 삶의 지도였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나를 빛나게 한다고 믿었고, 부모님께 드리는 정성이 곧 나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고결한 신념 뒤에서, 나는 타인의 얼굴 위로 흐르는 구름을 읽는 기상캐스터로 살아야 했다.
상대의 눈가에 살짝 서린 그늘이 소나기가 될까 봐, 입매의 미세한 떨림이 태풍으로 변할까 봐 나는 매 순간 내 마음의 기온을 꺾어 바쳤다. 당신의 하늘이 맑아질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정작 내 안의 기상청은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남의 날씨를 예보하느라 정작 내 마음속에 해일이 덮치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예보가 빗나가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그 모든 순간은, 배려라는 가면을 쓴 나 자신에 대한 학대였다. 타인의 기분이라는 지도를 따라 걷느라 정작 내 몸의 비명조차 외면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미술을 전공한 내가 대학 졸업 후 학교선배의 소개로 미술학원에서 잠깐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들어가고 신기하게도 미술원생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아이들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지자 원장님은 어떻게든 나의 원하는 조건을 맞춰줘 가며 함께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나 또한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보람도 있어 마치 내 학원인 것 마냥 책임감 있게 성실히 일해갔고 원장님은 나를 너무나 든든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독한 감기몸살로 인해 원장님께 처음으로 전화로 오늘은 출근이 어렵겠다고 사정을 얘기하자 원장님의 첫마디는 "네가 안 나오면 나는 어떡하니?"였다. 그러면서 자기 고충을 얘기하며 어떻게든 나와달라는 것이었다. 나의 찢긴 진심보다 상대의 매끄러운 일상이 더 소중한 세계, 그 차가운 예보 속에서 나는 사회생활에 대한 첫 회의감과 사람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또 하나의 기억은 결혼 후 남편, 아이들, 시댁, 친정까지 챙기면서 직장에서 과다업무와 끊임없는 성과를 증명해내야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허리디스크가 파열되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던 내게 상사는 "내가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라며 계속해서 나를 호출했다. 그들에게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가동되어야 하는 편리한 기계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장 시린 눈보라는 시댁이라는 가족 안에서 불어왔다.
아들 귀한 집안에 동서가 첫 손주를 낳았을 때 온 집안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나는 며느리로서 정말 축하해 주며 기꺼이 박수를 보냈지만, 정작 내가 간절히 기다려온 아이를 어렵게 가졌을 때 세상은 나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심한 입덧과 유산증세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던 조카의 돌잔치 날, 남편을 시댁에 보내고 죄송한 마음을 담아 전화를 드린 내게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오늘 같은 날 네가 와서 일을 해야지, 어떡하냐, 어쩔 수 없지." 라며 화를 내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꺽꺽대며 삼켜낸 눈물은, 내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배려'와 '효도'라는 이름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고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다,
나의 인내는 당연한 의무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해일과 눈보라 속에서 나는 결국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조금씩 비바람을 견디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타인의 하늘을 살피는 기상캐스터 노릇을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내 안의 기상청을 스스로 가동한다. 내 마음에 구름이 끼면 "오늘은 쉬고 싶어"라고 말하고, 폭우가 쏟아지면 "도와줘"라고 손을 내민다. 예전처럼 웃으며 모든 것을 감내하는 대신, 무례한 요구 앞에서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선을 긋는다. 당신의 기분이 상할까 봐 떨던 나의 목소리는, 이제 내 진심을 전하는 또렷한 언어가 되었다.
무엇보다, 누구의 기분보다도 귀했을 '나의 기분'을 너무 오래 혼자 두어서 미안했다.
이제는 남의 안부보다 내 마음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타인에게 건네던 그 다정한 친절을, 나는 이제 매일 아침 거울 속 나에게 가장 먼저 건넨다.
나는 이제 타인의 날씨에 휩쓸리는 연약한 잎새가 아니라,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계절을 꿋꿋이 지켜내는 단단한 뿌리를 가진 나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친절임을,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