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박수는 내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
우리는 종종 '행복해 보이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곤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가방을 들고, 근사한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그 위에 화려한 필터를 입힙니다. 하지만 그 프레임 밖, 필터 너머에 남겨진
진짜 내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 또한 한때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조명 아래에서 나를 증명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입니다.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겉돌까 걱정되는 마음에 반 축구부 학부모 대표를 자처했습니다. 아이의 교우관계를 위해 시작된 모임은 매일같이 교육 정보를 공유하고 단체 여행을 다닐 만큼 돈독해졌고, 어느덧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 안에는 유독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늘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능력을 과시하던 엄마, 친정의 막강한 재력을 과시하던 엄마, 남편의 억대 연봉을 뽐내며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던 엄마까지, 모임의 화두는 자연스레 고가의 취미와 명품으로 흘러갔고, 어느 순간 아이들의 성적조차 엄마들의 서열을
결정짓는 잣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그 화려한 동행은 시기와 질투, 이간질이라는 민낯을 드러내며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결국 각자의 결대로 흩어진 뒤에야 마주하게 된 진실은 서글펐습니다.
여행 마니아라던 이는 끊임없는 대출로 겉치레를 유지 중이었고, 재력가의 딸이라던 이는 매번 부모에게 자의가 아닌 강요에 가까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명품으로 본인을 증명하려던 이의 화려함은 모두 빚이었으며, 남편의 연봉 또한 허풍이었습니다.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쌓아 올린 성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남의 눈에 비치는 '나'를
만드느라 정작 '진짜 나'를 돌보지 못한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관계의 균열을 목격하며 제 안에는 차가운 의구심 하나가 피어올랐습니다.
'인간은 왜 이토록 타인의 눈에 비치는 행복에 집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그들을 허영심 많은 이들로 치부해 버리기엔, 그 이면의 갈구함이 너무도 절실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삶에 인생을 거는 그 마음을 그저 어리석은 죄악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저를 붙들었습니다.
그 물음표를 해소하기 위해 저는 책을 펼치고 긴 사색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본능적 결핍과 행복의 본질에 대해 깊이 파고들며,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의 실체를
들여다보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공부와 사색을 통해 깨달은 것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위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허영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무리 내의 서열'과 '타인의 인정'은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본능이었습니다.
사피엔스가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온 그 유전적 흔적이, 현대에 이르러 '보이는 행복'이라는 기형적인 집착으로 발현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본능을 단순히 죄악시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이 가진 나약하면서도 처절한 본성임을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집착의 프레임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손에 쥐여준 나의 행복을 되찾아오기 위해, 이제는 상대적 행복이라는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고 '나'라는 존재 자체로 충만한 절대적 행복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어느 식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의 깊은 영지, 풍부한 교양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을 가진 폭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내와 용기, 정의감을 기르는 일도 중요하다.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통찰력을 기르는 일도 잊으면 안 된다. 요컨대, 인생의 폭과 깊이를 추구하는 속에
언제까지나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절대적인 행복이라고 해서 아무런 괴로움도, 고뇌도 전혀 없는 진공상태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즐거운 일만 계속되는 꿈과 같은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살아있는 인간인 이상,
희로애락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에 휘둘리고 지배당하는 것이 아닌, 파도타기를 즐기듯이 희로애락을 즐길 수 있는
경애를 '절대적 행복'이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프레임 밖의 일상을 평온하게 가꿀 때, 비로소 우리의 행복은
타인의 손이 아닌 오롯이 나의 손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화려한 필터가 없어도
당신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