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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윤 Jul 03. 2017

'못생긴 동물'이 사라진 지구.

'인류세 공원(Anthropocene park)'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영국에 있는 <못생긴 동물 보호 협회(The Ugly Animal Preservation Society)>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동물'을 투표로 뽑아서 발표했습니다. 그 영예의 1위는 바로 '블롭피쉬(Blobfish)'가 차지했습니다. 블롭피쉬는 호주 인근의 심해에서 살며 새우 등을 잡아먹고 사는 어류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블롭피쉬'에요. 심해에서 살기 좋게 부드러운 몸을 갖고 있지요. ⓒ Caters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블롭피쉬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지구 상의 멸종 위기 동물로 가장 유명한 동물을 꼽는다면 바로 '판다'일 텐데요. 만약 둘 중에 하나만을 보호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동물을 보호하고 싶으신가요? 사람마다 다양한 취향이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털이 뽀송뽀송하고 귀여운 판다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들 것입니다.


알아요. 내가 좀 귀엽죠.   ⓒ George Lu


실제로 호주의 머독 대학(Murdoch University) 연구팀에서 발표한 한 연구 결과는 못생긴 동물이 귀엽게 생긴 동물보다 멸종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연구를 주도한 트리시 플레밍(Trish Fleming) 교수는 우선 호주에 사는 포유류들을 좋은(good) 동물과 나쁜(bad) 동물, 그리고 추한(ugly) 동물로 나누고, 호주에서 이루어진 이 동물들에 대한 연구 논문들의 현황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추한 외모의 동물들에 대한 연구가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캥거루나 코알라 같은 귀여운 동물들의 연구 논문들이 월등히 많았던 것이죠.

나한테는 왜 관심이 없어요? ⓒ Aidan Jones

그러나 호주에 사는 331종의 포유류 중 45%가 추한 외모를 갖고 있으며 이 중 많은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결국 귀여운 동물들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만 연구 지원금이 많이 몰리기 때문이라고 플레밍 교수는 분석합니다. 한 마디로 못생긴 동물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관심도가 현저히 낮아서 자연스럽게 그 보전 노력도 만들어지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멸종 위기 생물들을 보호하고 자연을 보전하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상식이 됐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도덕적, 윤리적인 의무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따져 들어가 보면 이런 우리의 모순되어 보이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지구는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그려지듯이 인류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완전히 멸망하기보다는 조금 고난을 겪더라도 계속 잘 번성해 나갈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우리 인류가 지구와 함께 완전히 자멸해 버릴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니까요(뭐 우선 그리 믿어 봅니다). 하지만 결국 인류와 함께 살아남는 대부분의 동식물들이 알고 보니 우리 인류의 취향에 맞는 것들 뿐이라면 어떨까요? 이 지구 상에 우리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동식물들만 단조롭게 살아남게 된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지구의 모습을 네덜란드의 환경교육학자 코프니나(Helen Kopnina) 교수는 '인류세 공원(Anthropocene park)'이라고도 부릅니다. 영화 <쥐라기 공원>을 보면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인위적으로 공룡들을 선택적으로 부활시켜 공원을 만드는데, 그러한 '쥐라기 공원'처럼 우리 인류의 취향에 맞는 동식물들만 선택되어 박제된 듯 살아남은 지구의 모습을 '인류세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류세'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크뤼천(Paul Crutzen) 교수가 2000년도에 제시해서 유명해진 용어입니다. 인류에 의해 전 지구적으로 환경이 영향을 받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일컫는 용어이죠. 그만큼 지금의 우리 인류가 지구 환경에 대규모로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올해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주인에게 심한 학대를 받다가 구조되었지만 검은 털 때문에 불길해 보이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계속 입양되지 못하고 있던 유기견 '토리'를 입양해서 청와대의 퍼스트 도그(First Dog)로 삼았습니다. 청와대는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있다는 철학과 소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토리를 입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대한민국의 퍼스트 도그, '토리'에요. ⓒ 케어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페탈루마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개 경연대회(World's Ugliest Dog Contest)'가 열립니다. 벌써 29회째를 맞이한 본 대회는 장애나 신체적 결함 때문에 학대받고 버려지는 개들의 실상을 알리고 유기견 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인 올해 1위 상을 받은 개는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로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구조되어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 현재 다시 시력을 회복한 '마사(Martha)'였습니다.


2016년도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개 경연대회' 1위를 차지한 '스위피 람보' ⓒ EPA연합


이 글은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싶은 지구는 어떤 지구인가요? 핵무기로 폐허가 된 회색빛 지구는 물론 아니겠죠. 당연히 우리는 녹색의 지구에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녹색의 지구가 '못생긴 동물'들이 사라진 지구인가요? 우리에게 귀엽고 유용한 동식물들만 남은 지구인 '인류세 공원'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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