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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 Yoon Yi Nov 30. 2015

나의 사업 일기 - 1

2월은 나에게 행운이자 지옥의 길을 오픈해주었다

1

2015년 2월 어느 날.

평소 '도시락 앱'을 이용해서 종종 끼니를 때우던 나는 그날도 아무런 생각 없이 'ooo'어플을 실행하여 주문을 하였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30분에 걸쳐서 'o-pay'라는 프로모션(해당 어플과 연계된 결제 시스템 이벤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회원 가입을 하고, 카드 정보를 수록하고, 4~5가지 절차를 밟는 과정이 필요하다)을 이용하여 약 4,000원의 할인을 받고 우월감을 뽐내면서 친구에게 말한다.


"야~ 00 초밥 세트 2개 어때?"

"어..."

"3만 원인데 내가 4000원  할인받았어."

"어..."


미리 밝혀두는데 내 친구는 심성이 고운 아이다.



2

1시간이 경과되었다.

안 온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뭔가 잘못됨을 느끼고 어플을 실행시켜 해당 도시락 점에 직접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아, 네. 거기 000점 맞죠?"

"네. 맞아요."

"저기 제가 00 어플로 00 초밥 세트 2개 시켰는데 1시간이 지나서요."

"아... 네... 지금 막 출발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 그렇구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3

보통 30분 내로 배달되는 상황이 익숙한지라 고작 30분 더 오버하였다고 닦달을 한 나에게 사람에 대한 신뢰와 상부상조의 마음을 갖출 것을 요구하며 친구에게 말한다.


"하하, 오늘 주말이라 좀 바쁜가 봐. 곧 온데. 주문이 엄청 밀렸나 봐."

"어..."



4

2시간이 경과되었다.

안 온다.


슬슬 인내력에 한계가 온다.

더불어, 신뢰고 나발이고 겉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건 지성인으로서 추한 모습이기에 마음속으로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분을 삭인다.

이 얼마나 지성인다운,


'딩동~ 딩동'


왔다, 왔다.


엄청나게 찡그린 나의 마음과 달리 친구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배고픈 자와 배고프지 않은 자의 비교됨을 극명히 보여주는 순간을 목격한 나는 다시 차분해지려고 노력한다.

지성인, 지성인...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죠?"

"하하, 아닙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얼마죠?"

"네. 2만 6천 원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끝까지 지성인으로서의 예의범절이 이미 뼛속까지 뿌리내린 걸까?

이중인격의 나를 발견하며 다음에는 꼭 버럭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친구와 함께 도시락을 개봉한다.


5

...

...


"야. 이거 좀 심각하지 않냐? 맛이 왜 이래?"

"음...  우걱우걱"

"너 괜찮냐? 이거 완전 냉동된 거 그냥 가져온 거 같은데..."

"음...  우걱우걱"


애당초 먹는 것에 감흥이 없는 이 놈과 대화를 한 내가 잘못임을 느낀다.

음식이란 그저 적당할 때 기계적으로 입 안으로 넣어야 한다는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인간 같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가 이 부당함을 바로잡고 말 것이다.


6

전화기를 꺼내 든다


"저기요. 사장님. 이거 초밥이 거의 냉동 수준인데요?"

"아... 그래요?"

"제가 웬만하면 말씀 안 드리는 스타일인데 2시간 걸려서 이런 거 먹으면 심히 맘이 안 좋죠." (참 친절하다. ^^)

"네네, 다음번에 더 신경 써 드릴게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네네. 그럼 다음에 또 연락 주세요."

(뚜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그때 내뱉어야 했다.

하지만 난 그리하지 못했다.


대신 옆에 있는 미각을 잃은 친구에게 장장 1시간 동안 해당 어플의 시스템적인 문제(4000원 할인받으려고 스마트폰과 씨름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2시간 동안 늦은 이유에 대한 분석, 그리고 가격 대비 낮은 퀄리티의 음식이 우리에게 배달되기까지의 과정 분석, 더불어 이런 음식을 먹음으로써 우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점 등에 대하여 침을 튀기며  역설하였다.


"담부터 안 시키는 되지..."


친구가 말했다.


오늘부로 심성 고운 놈, 취소.


7

참 간단하다.


사실 그렇다.

평소라면 난 친구처럼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우리 같은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행동양식을 보인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담부터 안녕~


그런데 그날 신이 나에게 무슨 사명을 내리려고 작정한 것인지 나에게 해당 문제를 해결할 것을 명령하였다.


"000야. 네가 1인 가구를 위한 도시락 배달 사업을 하거라~"


신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난 선포했다


"그래~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 내가 이 땅의 1인 가구를 위한 값싸고 퀄리티 높은 최상의 도시락 배달 사업을 하겠다."


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내게 광명이 찾아왔다.

나의 도시락 배달로 인해서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고객들의 얼굴과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마구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세상에 큰 일을 일조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미각을 잃고 이제는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나의 친구에게  1시간가량 나의 도시락 배달 시스템에 대하여 설명을 하며 나의 각오는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 녀석의 침묵은 곧 긍정의 신호.


하러 가자.


8

"친구야. 나 간다. 내가 조만간 너한테 진행 상황 얘기해주게."

"엉... 잘 가. 너 사업하면 내가 꼭 고객이 돼주게."

"고맙다. 친구야. 아니, 고객님. 감사드립니다." (꾸벅, 꾸벅, 꾸꾸벅)


나는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이미 고객 1명을 확보한 것이다.


하하하.

사업 별거 아니잖아?


-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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