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친구 엄마 형숙 씨가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갖는 서운함이 어째서 이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희연 씨는 왜 몇 년째 밖을 나서기 힘들어하고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는지.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엔 큰 아이가 나를 찾았다.
"오늘 원래 10시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버스를 놓쳤어. 왠지 엄마한테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일 있었어?"
"작업실에서 나오려 했는데 콘센트에 전원을 내렸는지 돌아가서 자꾸 확인을 해야 해. 내렸다는 걸 아는대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 몇 번 반복하다가 버스 시간을 놓쳤어. 그리고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자꾸 내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게 맞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 아마 누군가 나를 씨씨티비로 보고 있다면 그 행동이 더 수상하게 보일 거야."
"아... 너, 많이 불안하구나! 많이 힘드니?"
"이번엔 힘들다기보다 너무 불편해."
군대 전역 후 어떤 사건 촉발로 아이의 불안이 드러났다.
해결이 어느 정도 되었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이론서에 있는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 내 아이라고 예외는 없나 보다.
아이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 지고 마음이 아팠다.
불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에... 지금은 고개가 숙여진다)을 불편해하고 미숙하게 봤던 내가 그 불안을 고스란히 전달받는 다니 그것 참, 낯설다.
우울증이 찾아오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감정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그 아픔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게 아들이라도 말이다.
'네 삶은 이젠 정말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되어 버렸구나. 엄마가 나서서 감당해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구나. 에휴. 어쩌니. 삶이 주는 훈련에 이렇게 빨리 접어들게 되다니.너무 많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아픔을 이런 생각과 함께 목구멍으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