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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May 14. 2021

너의 마음을 본다.

그 길을 가는데 50년이나 걸렸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 최애 프로그램이다.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서사를 통해 그들이 가지는 삶의 의미를 듣는 것이 흥미 있기도, 따뜻하기도, 때론 애잔하기도 하다.


어느 날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한 배우가 출연했다.

그녀는 다른 배우의 눈물 연기에 도움을 주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자기 감정에 몰입하여 스스로 눈물을 흘리는 배우는 많이 본 것 같은데, 상대편의 눈물을 유도 한다는 것은 또 처음 보는 광경.

그녀는 조세호에게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아 조세호가 눈물을 흘리며 오열을 하게 된다.

그냥 눈물이 아니라 오열.

그녀가 한 것이라곤 따스하게 눈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뗬을 뿐이다.

사실 별 기대감도 없었고 눈물을 쥐어짜는 것 같은 장면들을 여러 번 봐서 잠시 눈을 돌렸었다. 그런 모습들이 별로 진솔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세호가 우는 장면을 보고 연출된 장면은 아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무엇이 그의 주변을 페이드 아웃시키고 깊숙이 눌러 놓은 마음을 떠오르게 했을까... 


얼마 전 한 내담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벽 같아요. 진짜 딱 10분만 엄마가 내 마음을 제대로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더도 말고 딱 십 분만. 엄마랑 딸인데 세상에 태어나 서로의 진짜 마음을 모른다는게 너무 힘들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슬픈 눈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절망스럽게 내 마음으로 건네졌다.

한 동료의 이야기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오늘 내 생일인데,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처음이에요. 부모님이 생각난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좋아하시더라고요. 고맙다는 그 말 한 마디가 뭐가 그리 힘든거라고. 그동안은 그 말 한마디 꺼내는게 왜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요. 그 말 한 마디가 뭐라고..."

어떤 길인지, 참... 그 길이 가깝고도 멀다. 그 친구는 그 길을 가는데 50년이나 걸렸다며 복잡하게 웃었다.


요즘 브런치에서 진솔한 글들을 만나곤 한다.

이혼하여 힘든 이야기, 정서적인 어려움을 가진 이야기, 큰 사고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이야기,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이야기...

그들이 재밌게도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작 사고나 발생된 문제보다 가까운 사람들로 더욱 커졌다고.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을 글로 내어 놓으면서도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댓글에서도 돌을 맞을 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고.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내어 놓을 수 있는 곳은 나를 모르는 곳에서 글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방법이었다고.

그런데 그들은 댓글에서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보고 자신감을 찾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그것은 참 이상하고도 낯선 경험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자신을 덮고 있던 보호복을 벗어버리고 빨간 살갗을 그대로 드러낸 글 들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나도 그랬다고, 위로한다고, 힘들었겠다고...

어째서 사랑한다고 하는, 그래서 나를 가장 잘 알 것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는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없는 걸까.

슬픈 이야기다.


참, 어렵다.  나라고 다를까.

아이들과 그리고 남편과 잘 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마찬가지로 괜찮은 상담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진솔하게 서로의 마음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상담사'라는 직업 보다는 한 번 사는 인생, 참 만남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발을 디뎠던 것 같은데 그 걸음이 매우 더디다.

최근 로저스(진정한 만남을 통해 치유와 성장이 일어난다고 주장한 인본주의 심리학자)의 책 들을 다시 살핀다. 내가 무엇을 잘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다시 읽어도...또 읽어도 결국은 너에 대한 관심...이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몰랐던 거 아니다. 거의 10년 동안 매 번 곱씹고 곱씹었다. 진정한 관심, 진정한 공감, 진솔성.)

가만히 상대와 대화하는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진정 내 앞에 있는 대상, 그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걱정과 염려, 혹은 의무감과 책임감이 관계 사이에 떠오른다.

'나는 엄마로, 아내로 무엇을 어떻게, 제대로 해야 하는가?'

'나는 상담자로 무엇을 어떻게, 제대로 해야 하는가?'

말장난 같지만, '관심을 준다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 '너'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누구를 위한 것일까.


과거에 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아마 이혼한 부부들이 다시 만나 잠시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그 날은 결혼을 했을 때도 이혼을 했을 때도 떠들썩했던 중년 배우 사이의 대화를 볼 수 있었다.

아내는 지나간 서운함을 이야기한다. 남편은 그 당시의 상황이 오해였음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상황은 오해였으니 마음 아파할 필요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 오해로 인해 둘 사이의 관계가 여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어 속이 상한다고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보는 나도 점점 답답해진다.

상황이 아니라 마음을 보면 좀 나으련만, 이야기가 벽에 대고 말하듯 튕겨 나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내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깨달음만 얻었다고 했다.

절망스러운 표정이 마음을 대신했다.

그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을까.

나쁜 사람이라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진정한 마음이 서로 닿지 않는 모습은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진짜 중요한 것은 무얼까 종종 생각하게 된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옳고 그름이라는 정답이란 것도 없으며,  정해진 것이라곤 태어났고, 언젠간 죽을 것이라는, 실상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일 뿐인 것이 삶이다.

거기에 내가 의미를 붙인다. 그동안은 무의식에 밀려 의미를 부여했다면,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남은 시간을 살 수 있을까.


티브이에서 본 조세호의 오열을 보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미디어를 통해 보인 그들의  교류가 어떤지 그리고  무엇일지, 그리고 진짜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서로가 자신을 둘러싼 두터운 보호막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만날 수 있다면 그건 참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나는 너의 마음을 본다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FKyHyNow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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