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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윤 변호사 Mar 11. 2019

'불편함'의 인간미

우리, 조금만 불편해져 보자. 인간답게.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어 졌다.


우리는 기억한다.

어릴 적의 소풍날의 그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을.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 난 항상 기도를 하고 잤다. 

"내일 비가 안 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는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붕 뜬 마음으로 어렵게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나를 깨운 것은 부엌에서부터 솔솔 풍겨져 오는 참기름 냄새였다.


엄마는 딸의 소풍날이 되면 

어김없이 전날부터 햄, 맛살, 계란, 당근, 시금치, 우엉, 오이 등의 재료를 사서 

채 썰고, 볶고, 굽고... 그렇게 다양하게 손이 많이 가는 준비를 해 놓으셨다.

그리고는 소풍 당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갓 지은 흰쌀밥에 참기름과 소금, 통깨를 적당히 섞은 후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부엌 바닥에 모두 펼쳐 놓고 쪼그려 앉아 김밥을 말으셨다.


그 사이 전기밥솥의 '치이 이익~~!' 하는 소리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벌떡 깬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바로 부엌으로 달려간다.


엄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김밥을 말던 엄마는 빠르고 능숙한 모습으로 김밥을 송송 썰어주신다.

꼬다리는 내 차지.

나는 엄마께 드셔 보시라는 말도 없이 신나게 김밥을 집어 먹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난 그냥 별생각 없이 신나서 김밥을 간단히 집어 먹었지만,

그 김밥 안에 든 볶은 햄과 맛살, 채 썬 계란과 당근, 시금치, 우엉, 오이,

그리고 고소하고 간이 적당히 밴 고슬고슬한 밥과 반질반질한 김..

그 하나하나가 바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었다.


엄마와 내가 있던 그 공간.

참기름 냄새가 가득 밴 그 부엌의 온기는 엄마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김밥을 만들었다. 아니, 사랑과 정성을 만들었다.

소풍날의 그 따스했던 김밥이 먹고 싶었다. 재료를 일일이 고르고, 준비하여 김밥을 만들고 썰어 가족과 오손도손 먹었다. 비주얼 폭망임을 인정한다.


그랬다. 

내가 김밥이 먹고 싶었던 이유는 준비과정부터 사랑과 정성이 오롯이 담긴 그 맛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그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 아침부터 장을 보고 와서는

부얶에 신문지를 넓게 깔아놓고 각종 김밥 속재료 들을 일일이 다듬고 준비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갓 지은 흰쌀밥에 참기름과 소금, 통깨를 솔솔 뿌려 간을 했다.


간단히 먹는 것에 비해서 손이 참 많이 가는 과정이지만 전혀 귀찮거나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이 즐거웠다.

난 단순히 김밥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에.

난 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김밥을 만들고 그 김밥에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20여 년 전의 엄마도 그랬으리라.


사랑하는 내 딸이 소풍에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김밥을 맛있게 먹는 상상.

혹여나 내 딸 김밥이 다른 친구들 김밥과 비교될까 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더 먹음직스럽고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주고 싶었던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엄마는 그 번거로운 과정이 그리('하나도'라고 썼다가 바꿨다) 번거롭지 않았을 것이다.

되려 행복한 맘이 컸을 것이다.  


김밥을 만들며 그때의 젊었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김밥은 다 만들고 접시에 내놓은 후에 먹는 것보다

썰면서 한두 개씩 집어먹는 게 더 맛있는 법.


몇 시간 동안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아 정성스레 말고 썬 김밥을

가족들이 참기 힘든지 내 주위로 모여들어 쪼그려 않아 손으로 집어 먹는다.

그렇게 함께 사랑과 정성을 먹고, 부엌 가득 찬 온기를 느끼며 함께 미소 짓는다.


다양한 김밥집이나 편의점에서 가장 편하게 신속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이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간과 정성, 마음을 다해 만드는 김밥은 그냥 간단식으로서의 김밥이 아니다.

'사랑'이다.


조금 불편하고 번거로운 과정이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어우러지면,

간편함보다 더 큰 인간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불편함, 텀블러 사용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텀블러. 나 또한 오랜 기간 간편함에 중독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번거로운 게 싫어서 항상 일회용 종이컵만 써왔다.

그러던 내가 텀블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텀블러 사용은 다소 불편하다. 

매일같이 깨끗이 씻어야 하기에.


행동이 바뀐 것에 어떠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언젠가 내 책상 위에 쌓여있던 일회용 종이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중 

그 장면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던 것.


'나 진짜 간편함의 노예가 되었구나.'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내가 가장 큰 가치로 삼는 것이 '간편함'임을 내 행동이 증명하는구나'

'나는 과연 내 행동들에 고민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맞는 걸까?'

이러한 생각들로 번지자 새삼 일회용을 매일같이 아무 생각 없이 써대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는 번거로운 머그컵과 텀블러를 택했다.


사소하지만 '간편함'보다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하여 더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텀블러나 머그컵 씻는 그 2~3분으로 내 삶이 더욱 따스하고 가치 있어진다는 뿌듯함은 덤.



글쓰기도 참 불편한 작업이다.


나는 변호사다.

뭐 따지고 보면 말과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지만, 

그 건 내 직업상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치고.


나는 왜 책상머리에 앉아서 변호사 일과 상관없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넷플릭스, 유튜브 등등 시간을 순삭 하며 편하게 쉬며 즐길 수 있는 수단도 참 많은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글도 김밥과 같다.

소재를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한 글자, 한 단어 생각해서 글을 이어가고, 수정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머릿속의 여러 소중한 경험과 기억들을 떠올리며 가지런히 정리한다.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글에 내 마음과 정성을 더 한다.


그렇게 완성된 나만의 글은, 

비록 서툴고 부족하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따스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 누군가에게는 이전 추억을 되뇌는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불편함의 인간미를 느끼고 싶다.


오늘 이 글이 내 브런치 첫 글이다.

아직 구독자도 없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글쓰기의 고됨과 불편함을 통하여 내 다양한 삶의 경험과 생각들을 글로 완성하여

사람들과 따스한 소통을 하고 싶다.


참기름 냄새 가득한 부엌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방금 썬 김밥을 집어먹는 그 행복을 

당신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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