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법안이 입법예고되었다.
법무부는 ’20. 9. 28.(월),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40일간의 의견수렴 절차에 돌입하였습니다. 오는 11월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마치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연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이들 법안이 올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부터는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업(언론사 포함) 하시는 분들께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법안인 만큼 모두 핵심 내용은 미리 알아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래에서 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의 개념과 대표적 사례, ② 법안의 핵심 내용, ③ 치열한 논쟁이 이어질 찬반 입장들에 대하여 쉽고 간결하게 정리해 드릴게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이슈에 대해서는 이 글 하나로 충분합니다!
집단 소송은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주로 많은 수의 피해자와 소액의 각각의 피해규모로 인해 개개인이 소를 제기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쉬운 예로 설명해 볼게요.
A 기업의 고객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 서버가 뚫려서 고객 약 100만 명의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내 개인정보 또한 유출되었음이 확인되어 A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어도 손해배상액이 얼마나 인정될지, A의 잘못과 손해 사이 인과관계 등을 어떻게 입증할지 막막합니다. 또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치 않죠. 그러다 보니 “에이 됐다!” 하며 접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집단 소송으로 많은 피해자를 모아서 함께 A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된다면, 십시일반으로 수임료를 모아 변호사를 선임함으로써 훨씬 낮아진 부담으로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볼게요.
2009년 8월 26일은 한국투자증권이 2007년 8월에 발매한 '부자아빠 주가연계증권(ELS) 289호'의 만기일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그날 KB금융 보통주 주가가 54,740원 이상일 경우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투자원금의 128.6%의 만기 수익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는데요. 이틀 전까지만 해도 56,000원을 상회했던 KB금융의 주가는, 8월 25일부터 이 상품의 헤지를 담당했던 피고 도이치뱅크에 의한 KB금융 주식 대량 매도로 인해 8월 26일 54,700원으로 하락했고, 결국 투자자들은 기대했던 만기 수익금(투자원금의 128.6%) 대신 투자원금의 74.9% 만을 상환받게 되었습니다.
이 상품에 투자한 피해자는 모두 494명. 피해자 중 일부가 도이치은행이 만기조건을 충족하기 직전에 기초자산을 대량으로 매도해 만기수익금 지급이 무산됐다며 피해를 배상하라는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도이치은행이 주식을 매도한 것은 시세를 조종할 목적으로 인위적인 조작을 가한 것임이 법원에서 인정되었습니다. 원고인 피해자들이 승소한 것이죠.
집단소송의 경우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적극적으로 제외신고(쉽게 말해서 '나는 빼 달라'라고 신고하는 것)를 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판결의 효력을 받게 되는데요. 그리하여 494명의 전체 피해자 중 일반소송을 제기한 18명과 제외신고를 한 12명을 제외한 464명이 분배 절차에 따라 승소판결의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집단소송제가 있었기에 피해자들 대부분의 피해회복이 가능했던 거죠.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권리⋅법익 침해에 대하여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으로 결과 발생을 용인하는 정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가해자를 응징하는 한편 가해자 내지 다른 사람이 앞으로 그와 유사한 불법행위를 하지 못하게 억제하기 위하여, 피해자가 실제 입은 손해의 만족을 의미하는 통상의 전보적 손해배상에 더하여 특별히 지우는 또 다른 손해배상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가해자의 행위가 반사회적이면서 악의가 있을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쉬운 예로 설명해 볼게요.
장난감을 제조·판매하는 A 회사가 있습니다. 그 회사가 법에서 금지하는 유해화학제품으로 장난감을 만들어서 판매한 탓에 한 아이가 피부병에 걸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아이가 피부병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완치하는데 까지 드는 총 100만 원만큼이 피해자가 실제 입은 손해입니다. A 회사는 원칙적으로 아이에게 위 1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해 주면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A 회사는 ‘장난감을 파는 것이 돈이 되니 그깟 100만 원쯤이야 손해배상 해 주고 말자’라며 가볍게 넘겨 버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가해자인 A회사 그리고 또 다른 장난감 회사가 다시는 해당 유해화학제품으로 장난감을 만들지 못하도록 막을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위 치료비 상당액인 100만 원의 3~5배 정도를 징벌의 의미로서 특별히 추가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늘어날수록 가해자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안 되겠다. 계속 장난감을 팔면 회사 망하겠다.’ 생각하고 정신을 번쩍 차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실제 사례를 들어볼게요. 그 유명한 ‘맥도날드 커피’ 사건입니다.
1992년 당시 79세인 한 여성은 미국의 한 맥도날드 드라이브 쓰루(차 안에서 테이크아웃하는 방식)에서 커피를 사서, 크림과 설탕을 넣으려고 컵 뚜껑을 열다가 엎지르는 바람에 3도의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피부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여성은 맥도날드 측에 2만 달러의 치료비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해 결국 소송을 제기했죠.
법정 다툼 끝에 여성의 과실 20%, 맥도날드 사의 과실 80%를 인정해서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64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최종적으로는 양자 간 비밀합의로 종결되었기 때문에 어떤 보상이 이뤄졌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갸우뚱한 분들 계실 겁니다. ‘아니, 여성이 차 안에서 부주의로 커피를 엎질러 벌어진 일인데 그보다 몇십 배를 배상받는다고? 맥도날드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냐?’
그러나 위와 같이 법원이 판단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① 맥도날드 본사는 맥드라이브 매장에는 운전자가 운전 중 커피를 마시면서 오래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일반 매장보다 좀 더 높은 온도의 커피를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러한 온도가 여성의 심각한 화상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② 이 건 이전 약 10년 간 이와 유사한 소비자 불만이 700건 이상 접수됐다는 내부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맥도날드가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징벌적 배상 판결의 결정적 이유였던 거죠.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시정조치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거대 기업에게 그 규모에 맞는 커다란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후 맥도날드는 컵홀더를 쓰고 소비자 화상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자,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법안에서 여러분께서 알아두셔야 할 내용만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했습니다. 이 것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위 내용이 어려워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간단히 이해해도 충분합니다.
기업(규모 불문, 언론사 포함)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용됨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 가한 경우 실제 손해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음
'고의'란 알면서 악의적으로 손해를 가하는 경우, '중과실'이란 '고의'까지는 인정되지 않지만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 예를 들어, 화장품 제조업체가 발암물질이 함유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제조 및 판매함으로써 실제 소비자 중 암이 발병한 경우 '고의'에 해당. 화장품 제조업체로서 일반적인 확인 절차를 거친다면 충분히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치지 않아 발암물질 함유 여부를 모른 채 제조 및 판매함으로써 실제 소비자 중 암이 발병한 경우 '중과실'에 해당
분야 제한 없이 피해자 50인 이상이라면 집단소송으로 손해배상 청구 가능
집단소송에서 피해자가 승소한 경우, 집단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도 제외신고 하지 않는 한 판결의 효력을 받아 손해배상액을 분배받을 수 있음
집단소송제를 통하여 피해자의 피해 구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장, 입증 책임을 덜어주고 재판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증거 확보가 좀 더 쉽도록 함
법 시행 전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됨
[찬성 입장]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원고 측에서는 소액의 피해를 입은 다수의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고, 피고 측에서는 많은 피해자들이 제기하는 수많은 개별 소송들을 개별적으로 방어하기보다는 집단소송에 대한 방어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법원의 입장에서도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 대한 판단을 통일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소송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음.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에 따라 예전에는 피해를 입고도 제소가 힘들었던 사건들에 대한 소송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배상액도 커지게 되기 때문에, 기업 등 사업자는 부적절한 행위의 반복을 억제하게 되어 불법행위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
소비자의 건강을 해치는 부적격 제품을 판매하는 비양심적인 부정 기업들을 퇴출시킴으로써 기업활동의 투명성이 강화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음.
[반대 입장]
집단소송은 개별 당사자들의 비용이 매우 적게 들기 때문에 패소에 대한 부담은 적은 반면 변호사는 많은 보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남소 또는 기획소송의 가능성이 있음.
집단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대외신인도가 저하되는 등 기업들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음.
법 시행 이전 사건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헌법에 반할 소지가 있음
제도적 부담에 따라 기업들은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신기술·신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음
[찬성 입장]
피해자에 대한 완전한 손해보전을 가능하게 하여 기존 손해배상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
우리나라의 경우 위자료가 지나치게 적고, 소비자 피해 사건에서 정신적 손해가 입증되기 어려워 손해배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하여 완전한 손해보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음.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업자 등에 대하여 실손해배상 외에 징벌배상을 부과할 수 있어 사업자 등의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제재 및 억제할 수 있음.
고의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형사책임의 입증요건이 엄격하여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나, 형벌을 부과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한 영역에서 징벌적 배상이 효과적이면서도 적절한 제재수단이 될 수 있음.
법 위반행위로 얻은 부당 이익을 환수함으로써 향후 법 위반행위의 유인을 제거하여 법 위반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지함
[반대 입장]
징벌적 배상의 대상이 되는 법 위반행위는 동시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므로, 하나의 불법행위에 제재적 성격의 징벌적 배상책임과 형사처벌이란 제재가 이중적으로 부과되는 결과가 발생되어 헌법상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문제가 있음.
징벌적 배상은 기능적으로 제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제재가 되면 과잉처벌금지의 원칙 위반이 될 수 있음.
형사소송절차는 행위자의 불법성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넘는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나, 징벌적 배상제도는 이러한 헌법상의 적법절차원칙을 우회하여 민사소송절차를 통해 형사상 제재와 유사한 징벌을 부과하게 되므로 헌법상의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
징벌적 배상제도는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많은 이익(우발이익)을 얻도록 하게 되는데, 우리 민법은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할 뿐 우발이익의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징벌적 배상제도는 우리 민법의 손해배상에 관한 근본 원칙 및 제도와 조화되기 어려움.
언론에 대해서도 집단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져 가짜 뉴스 등 악의적 오보로 인해 피해를 받았다고 인정될 때 그 액수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게 됨. 그러나 '악의적 가짜 뉴스'라는 기준이 모호하고, 판단 주체가 불리한 기사 비판적 보도를 악의적인 보도로 규정한 후 언론 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큼.
자, 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의 개념과 대표적 사례, ② 법안의 핵심 내용, ③ 찬반 입장에 대하여 살펴봤는데요. 집단적 피해의 효율적 구제와 예방, 그리고 기업의 책임경영 유도라는 근본적인 목표는 달성하되 제도의 악용으로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는 의견 수렴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더욱 정교한 법의 설계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작동하는 법'이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