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명인가
나는 커피중독자다.
그것도 아주 진성 커피 중독자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물 한 잔 마시고, 바로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바리스타로 일하기 전에도 집에서 종종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마시곤 했다. 커피향을 맡으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면서 일이나 공부에 좀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었다. 캐나다에서 스타벅스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복지 혜택으로 커피빈을 무료로 구매할 수 있었는데, 이 커피빈들을 착실하게 모아서 한국으로 고이 모셔왔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아직까지도 커피빈이 차고 넘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커피빈 가는 기계는 따로 없어서 일일이 그라인더로 직접 갈아내야 했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 커피콩을 손으로 갈아내는게 많이 귀찮았다. 거기다가 집에서 유일하게 바리스타 일을 해본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됐었다.(하하핫 당연한 것인가)
그러다가 누나가 선물을 하나 보내줬다!
누나가 보내준 선물이란 바로 드롱기 에스프레소 머신이었다. 에스프레소부터 롱 커피, 스팀까지 가능한 커피 머신이었다. 이렇게 기능이 출중한 커피머신이다 보니 가격대가 꽤 쎘었다. 우리 집 가족들이 커피를 하도 많이 먹으니 누나가 직접 큰 맘 먹고 돈을 쓴 것 같다. 너무너무 고맙당!!
드롱기 브랜드는 커피 머신 쪽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브랜드인 것 같다. 백화점에도 브랜드 커피 머신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도 보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커피 머신을 찾아봤을 때 가장 많이 검색된 브랜드도 드롱기였다. 나중에 독립을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사고싶은 것도 바로 커피 머신이었다. 그래서 드롱기라는 브랜드에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내 집에 하나 장만하게 될 줄이야!! 머신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박스에서 꺼내어 부엌에 설치했다.
머신을 다루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메뉴얼을 보고 이것저것 대충 조작해보니 에스프레소 내리는 법, 스팀하는 법, 샷 길이 조절하는 법 등 전반적이 조작 방법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흥분한 마음으로 조작법을 파악한 후, 바로 커피빈을 하나 오픈해서 머신에 넣고 바로 에스프레소를 뽑아 먹어 봤다.
가히 꿀맛이었다.
버튼 터치 한 번에 커피빈이 갈리고 에스프레소까지 졸졸 나오는 모습에 나는 연발 감탄사를 외쳤다. 그렇게 나온 홈카페의 첫 에스프레소 샷은 너무나도 향이 좋고 달콤했다. 이렇게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들어오고 홈카페가 마련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바뀐 점은 이제 더 이상 그라인더로 커피빈을 갈아먹을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드롱기 머신은 커피빈만 넣어주면 버튼 조작 한 번에 커피빈을 갈아주고 에스프레소까지 뽑아준다. 이게 얼마나 편한지는 집에서 핸드드립 커피만 먹다가 머신으로 갈아탄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조작법이 단순하다 보니, 조금만 알려드려도 부모님도 금방 머신을 조작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가족들은 거의 블랙 커피, 아메리카노만 마시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만 추출하는 법만 알면 된다. 그래서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빨리 배우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 커피 먹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내가 캐나다에서 가져온 커피빈들이 또 (내 기준으로) 맛있는 것들로만 나름 엄선한 것들이라 시중 커피빈들에 비해 퀄리티가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이전에는 핸드드립으로 내려먹는 커피보다 에스프레소 커피가 땡길 때가 있으면 밖에 나가서 테이크 아웃 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집에서 버튼 한 번이면 다 해결된다. 그래서 커피 사먹는 비용 지출이 약간이지만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문명이 주는 이로움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커피 머신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귀찮더라도 꾸역꾸역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먹었다. 커피빈 가는게 귀찮더라도 커피는 좋아하니까! 하지만 커피 머신이 들어오고 나서 이제 커피빈 그라인더는 조용히 부엌 구석으로 옮겨졌다. 사람이라는게 한 번 편안함을 맛보면 다신 과거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했던가. 이렇게 커피 머신에 익숙해져 버렸으니 다시 핸드드립 커피를 찾는건 아마 엄청 나중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술이 참 좋긴해 그래도.
커피 중독자들이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