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은 언제나 중요하다
2021년 3월 핫 키워드 = <조선구마사> 논란
2021년 3월, 대한민국 방송사에 기록적인 사건이 하나 터졌다. 바로 사극 드라마 한 편이 2화 만에 조기종영을 해버린 것이다. 2화 만에 드라마가 조기종영하는 것은 대한민국 방송사에 전례가 없던 일이었던지라 그 자체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조기종영을 하게 된 이유이다. <조선구마사>라는 사극 드라마가 심각하게 고증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고증 왜곡도 모자라, 맞지도 않는 각종 중국풍 소품들 때문에 동북공정 빌미까지 제공해줬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은데, 동북공정 논란까지 터지니 방송사로서도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업들은 모든 협찬을 중단했고, 국민들은 폐지 청원을 했고, 그리고 끝내 조기종영이라는 이름의 폐지 결정이 내려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태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사태를 보고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것은 이번 조선구마사 논란 사태를 보고난 후,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다.
시청자들이 사극을 볼 때, 가장 많이 주목하고 신경쓰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고증의 퀄리티이다. 등장인물들의 복식이나 식습관, 주거 형태, 정치 상황 등의 요소들이 당시 시대 상황과 맞아야 한다. 물론 가끔씩 오류가 나는 부분이 있기야 하겠지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가능한 전문가와 함께 꼼꼼하게 확인하여 고증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추후에 고증 오류 논란에 빠질 위험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보는 네이버 웹툰 중에 <칼부림>이라는 웹툰이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웹툰의 찐팬이다. 1부 1화부터 지금까지 항상 챙겨보고 있으니 말이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02916&page=1
조선시대 인조반정 시점을 시작으로 현재 4부 연재를 시작한 사극 웹툰이다. 이 웹툰의 평점을 보면 대부분이 9.5점 이상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꾸준하게 9.5점 이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 웹툰이 뛰어난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이 웹툰을 극찬하는 이유가 있다.
고증이 치밀하다 못해, 미칠 정도로 완벽하다!!!
그렇다. 독자들은 이 웹툰의 완벽에 가까운 고증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환도를 띠돈에 차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전투의 양상, 등패, 심지어 당시 후금의 변발 스타일까지 너무나도 꼼꼼하게 고증이 되어있다. 작가인 고일권 작가님은 이 웹툰을 그리기 위해 매 회마다 4명의 한국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철저하게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러니 고증이 완벽할 수 밖에 없다.
고증이 완벽하다 보니 독자들끼리 댓글에서 서로 자신들이 아는 역사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한다. 그렇게 독자들이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웹툰에 대한 평판이 좋아진다. 자연스럽게 찐팬들을 확보하게 되었고, 네이버 웹툰에서 이 웹툰만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렇듯 이제 사극 콘텐츠 소비자들은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사극의 고증 퀄리티를 그 콘텐츠의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누구나 손 쉽게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보니, 고증의 정보도 쉽게 찾아낼 수 있고, 고증 정보가 많아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고증 퀄리티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최근 나오는 한국 사극 드라마는 고증 논란을 피해간 일이 드물다. 가장 최근 예로 <철인왕후>에서도 고증 논란에 역사 왜곡 논란이 터져나왔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재미만 있으면 됐지, 사람들이 고증에 대해 신경쓰겠어?
<철인왕후> 뿐만 아니라, 드라마 <화랑>의 샤워신 논란, 드라마 <대왕의 꿈> 웨딩 드레스 논란 등 이전부터 계속 고증 논란이 있었는데 뭔가 개선되는 모습이 없었다. 재미있고 자극적이어서 시청률이 잘 나오면 장땡이라는 마인드로 제작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심히 의심이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업이 쌓이고 쌓여서 이번 <조선구마사>에서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조선에서 중국식 월병을 대접하고, 중국식 검 소품, 중국풍 인테리어 소품, 서양식 갑옷 등 누가봐도 중국 동북공정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지난 번 한복공정과 파오차이 이슈 때문에 역사 인식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진 이 시기에 말이다. 거기다가 개인적으로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태종을 백성 학살자로 만들고, 왕자인 충녕대군을 사제의 시중을 들게 만들어버렸다는 점이었다.
태종 이방원은 비록 현대에 와서 킬방원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왕권을 위협하는 정적들에게나 킬방원이었지,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운 왕이었다. 세종대왕은 제위기간 동안 농업, 천문학, 음운학, 국방, 문학, 경제 등 모든 분야를 성장시켜서 조선 왕조라는 국가 자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을 정도로 슈퍼 엘리트이자 천재였다. 감히 그런 두 인물까지 역사 왜곡의 희생양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선을 지나치게 넘어버린 것이다.
사극 드라마의 높은 고증 퀄리티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인데, 그 기본적인 시청자의 니즈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욕먹고 망할 수 밖에 없지.
우리는 언제나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작 많이 강조하면서도, 많이들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극에서의 기본은 무엇일까? 사극에서의 기본은 당연히 그 시대의 고증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더군다나 실존했던 인물을 쓰는 것이라면, 그 고증의 책임감은 더더욱 커져야 한다.
실존했던 인물을 역사와 다르게 연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역사 왜곡, 고증 오류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드라마라는 이유로 약간의 수정은 가해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작가가 그리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실존 인물을 가져다 쓰는게 아니라 그냥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버리면 된다. 그 옛날 <해를 품은 달>이나 <킹덤>처럼 말이다. 그러면 인물 고증에 관해서는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했던 배우들에게 많이 실망하게 됐다. 인터뷰를 보면, 어느 정도 작품 흐름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촬영에 임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 보고 재밌어 보여서 촬영을 결심했다는 말도 했었으니...
그렇다면 최소한 이러한 역사 왜곡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태종과 세종에 대한 인물 왜곡이 대놓고 드러나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을 '단 한 번쯤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문제가 요즘 같이 역사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엄청난 비판을 몰고올 수도 있을거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최민식 배우가 영화 <명량>에서 이순식 장군 배역을 맡았을 때, 이순신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엄청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 기록을 보고, 어떤 눈빛을 했었을지 깊이 고민하고 상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연기를 할 때 정말 막막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분의 위대함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게 바로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