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낯선 남성에게 욕을 들었다.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불그스름하고 눈이 풀린 낯선 남성은 ‘씨0년’으로 말문을 열더니, 여러 단어를 조합해 욕을 퍼부었다. 그 욕은 단순히 한 마디로 끝나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자칫 때리기라도 할 듯한 몸짓으로 위협까지 가했다. 내 옆엔 아들인 큰아이와 딸인 작은아이가 있었다.
처음엔 내게 한 말인지 몰랐다.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아이들과 서 있었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쌍욕을 들을 만큼 원한을 사거나 불편을 초래할 일을 하지 않았다. 더불어 십여 년 전에 라섹 수술을 하며 밝게 보이던 세상은 최근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흐릿하게 보이곤 했다. 욕의 근원지를 찾아 낯선 남성이 있는 방향을 한 번 바라봤을 때도, 욕을 퍼붓는 낯선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한 줄 몰랐다.
신경 쓰지 않았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 배웠고, 세상에 미친 사람이야 많으니, 낯선 남자가 욕을 하거나 말거나,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아이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혼자라면 누군가 욕을 하든 말든 귓등으로 흘리며 무시했겠지만,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이동한다. 멀찍이 떨어졌음에도 남성은 욕을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빛은 점차 더 흔들린다. 이 불안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동시에 낯선 남성의 저급한 도발에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건조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욕설은 무시하라고 말한다. 불안함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성향의 큰아이는 쉴 새 없이 들리는 욕지거리에 자꾸 낯선 남성을 흘깃거린다. 큰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쳐다보지 말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자리를 조금 더 이동한다. 객차 한 칸 정도는 이동했다.
멀찍이 떨어졌지만, 남성은 고장 난 라디오라도 되는 것처럼 욕을 되풀이한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옆 칸에 탄 남성은 객차를 연결하는 통로의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노려본다. 큰아이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모른다.
몇 정거장을 이동한 후 다른 호선으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큰아이는 욕을 하며 위협하는 남성이 따라올까, 등 뒤를 자꾸 쳐다본다. 새로운 지하철을 타고 그 남성과 완전히 떨어졌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야 얼굴에서 불안함이 사라졌다.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상한 사람은 무시하는 거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말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어떤 밤이 생각났다. 저녁을 먹고 운동하기 위해 혼자 집을 나섰던 날. 한강으로 가기 위한 건널목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파란불로 바뀌고 차가 모두 멈춘 걸 확인하고 길을 건너는데, 절반쯤 건넜을 때, 맞은편 1차로에서 흰색 SUV 차량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스쳤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든 차량으로 0.1초만, 내가 한 걸음만 앞섰어도 차에 부딪혀 저 멀리 날아가 머리부터 바닥으로 퉁 떨어졌을 속도였다. 하얀색 SUV 차량은 건널목이 애초에 그 자리에 없던 것처럼 횡단보도를 15미터 지나 교차로에 유유히 섰다. 급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마치 제때 제 순간에 잘 멈춰 선 듯한 차량인 것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기어 올라온 나는, 차를 향해 달려가 운전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차게 차 문을 열고 운전자를 끌어내려 멱살을 잡고 화내고 싶었다. 도대체 어디다 정신을 두고 운전하냐고 큰소리를 고래고래 치며 미친 듯이 화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정지된 상태로 나를 칠 뻔한 하얀색 SUV 차량을 몇 초간 바라봤을 뿐, 가던 길을 갔다. 집을 나설 때, 내 목적은 운동이었으니까. 나는 운동을 하러 가던 길이었고, 저녁 시간에 건널목 신호를 무시하며 빠른 속도로 달린 차량은 음주운전으로 의심되었다. 내가 뛰어가서 신호 무시한 운전자를 붙잡고 길길이 화를 내며 따져봤자, 내 몸은 다치지 않았고, 경찰을 불러도 별다른 해결책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더불어 운동조차 못 하면 오늘 내 하루는 아무런 소득이 없으리라는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놀란 마음을 누르고 가던 길을 갔지만, 과연 그게 정말 나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운동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코앞을 스친 차량이, 그 상황이 반복되어 재생되었다. 정말이지 그대로 차에 치여 싸늘한 도로에 머리부터 떨어져 죽어버렸다면, 혹은 크게 다쳤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자 무섭고 억울했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타인으로 인해 내 삶이 소멸될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자,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다.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내가 제대로 따지지 못했다는 점이 불난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남편이 옆에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혹은 내가 덩치가 큰 남자였다면, 아무런 고민 없이 그 차량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을까.
집에 도착하기까지 이런저런 물음이 벙긋하지도 못한 내 입을, 내 목을 바늘처럼 들쑤셨다. 지릿한 분노는 집까지 따라왔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가족을 만난 나는 죽을 뻔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털어놓음으로써 더러운 감정을 애써 마음 한편으로 구겨 넣었지만, 의문은 계속 따라다녔다. “정말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후에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화내지 않고 제 갈 길 잘 가고, 운동을 잘 마친 내 모습에 대해 곱게 포장하여 지인에게 말했을 때, 지인은 내게 ‘정신승리’라고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공감한다.)
이유 없이 쌍욕을 퍼붓고 위협을 한 낯선 남성을 만나고, 혹시 몰라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은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마음에 상처가 남았을까 싶어, 아까 많이 놀랐을 텐데 괜찮은지 물었다. 불안함이 눈에 띄게 보였던 아들은 분하다고 했다. 자신이 아직 힘이 없어서, 키가 작고 힘이 없어, 부당한 상황에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한 것이 화난다고 했다. 공감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 내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나보다 키가 커지고 힘이 세질 아이다. 3년만 지나도 그 남성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걱정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커서 나처럼 억울할 일은 없겠지.
겉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은 딸에게 물었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딸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무시하면 된다고.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며. 어디서 많이 들었던 대답이다. ……내가 가르쳤으니까. 딸은 그 외에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사건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차량에 치일 뻔한 사고와 낯선 남성에게 욕을 들었던 상황은 뜨겁지 않은 서늘한 감정으로 남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사회 뉴스만 봐도 매일매일 무서운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나와 아이들은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았고 무사히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러나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무시라는 답이, 내 딸이 커서도 부당한 상황에서 계속 무시만 하며 지내야 할 그런 상황이 과연 맞는 걸까.
나는 궁금하다. 정말 내가 무시하는 것만이 최선이냐고.
누가 내게 욕을 지껄이는 데도, 내게 칼만 들지 않았지, 신체의 안전이 노골적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도망치고 무시하면 그만인 것이냐고. 난도질당한 내 마음은 그럼 어디서 치유할 수 있는 것인지,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다.
'왜 나는 참기만 해야 하냐고' 묻지 않은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노화인지 뭔지 갑자기 침침해진 시력으로, 그 남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남은 것만이 내게 한 조각 위안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