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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Mar 16. 2023

30분에 한 번씩

 어느 날부턴가 오른쪽 무릎 관절이 시큰거렸다.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는 트레드밀 위에서 4km를 달리던 때였다. 일상에 틈을 내어 뛰는 일은 몸이 달궈지기 전까진 힘들고 귀찮아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어 1km 5분대로 달리곤 했다. 그게 무릎에 문제가 되었을까.


 내가 다니던 피트니스센터는 건물 5층에 있었다. 피트니스센터가 오픈했을 무렵부터 다녔다. 여성 전용 피트니스센터여서 마음에 들었던 그곳은 통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곱게 쪼개지며 피트니스센터의 공간을 구석구석 채웠다. 밤이 되면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반짝이는 불빛이 햇살을 대신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혼자 운동하는 게 좋았다. 온화하고 고요한 공간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 심장이 뛰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회원권을 3년 동안 연장했다.


 혹독한 코로나 시기를 잘 버티는 것처럼 보이던 피트니스센터는 코로나가 끝나갈 때쯤 2주 뒤에 폐업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갑작스러운 폐업 통보에 놀랐다. 센터 대표는 회원권을 모두 환불하려면, 경영난이 더 심해지기 전에 급하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양해해 달라고 했다. 애정을 오래 두었던 피트니스센터는 마무리까지 애틋하게 하고 사라졌다.


 무릎의 상태도 지켜볼 겸 마음에 쏙 드는 피트니스센터를 찾기 전까지는 혼자 운동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피트니스센터를 찾기 어려웠다. 이전에 다니던 피트니스센터와 비슷한 공간을 찾고 싶었다. 통유리창에 햇살이 잘 드는 공간은 대부분 퍼스널트레이닝을 하는 곳이거나 남녀공용이었다. 퍼스널트레이닝이 필요하진 않았다. 남자 회원과 함께 어울려서 운동하는 것은 불편하진 않지만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전에 운동했던 곳과 최대한 비슷한 센터를 찾고 싶은 마음. 내 마음이 문제였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매력에 빠지기 전까진, 그전에 경험해 본 것이 제일 좋아 보이니까. 나는 낯선 것에 적응할 힘이 없었다. 결국, 반년이 넘도록 새 피트니스센터를 찾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았으니 무릎의 통증은 사라졌어야 했다. 무릎의 통증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나, 조심하고 싶어 걷기를 제외한 하체 근력운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릎의 통증은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어느 날은 배불리 점심을 먹고 만 오천 보 정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 날 고관절이 뻐근했다. 이전에는 2만 보, 4만 보를 걸어도 아프지 않았는데. 어째서 겨우 만 오천 보를 걷고 고관절이 아픈 거지. 무릎뿐만 아니라 고관절까지 통증이 생기다니, 육체의 노화로 인해 생기는 통증인 걸까. 낯선 통증에 겁이 났다. 병원에서 확인해 봐야겠다.


 병원을 선택할 때 의사의 상냥함은 중요하다. 다니는 정형외과는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선생님께서 차분하고 다정하게 설명을 해주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지, 예약하지 않고 갔더니 대기만 한 시간을 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감기 때문에 쉰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대기실에서 한 시간 기다린 나도 괴로웠지만, 쉰 목소리로 쉼 없이 환자를 보는 선생님도 고달프겠다. 목이 쉬어 갈라진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진료실에 밥벌이의 고단함과 신성함이 교차했다.

 그간 느낀 관절 통증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찍어보지도 않고 관절 문제는 아닐 거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보라고 했다. 그리고선 내 발목과 무릎,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통증이 없죠? 물었다. 그랬다. 통증이 없었다.

 선생님은 지난 진료기록을 보여줬다. 딱 일 년 전에 내가 왼쪽 무릎으로 진료를 받았다. 그때 엑스레이를 보니 척추 5번과 꼬리뼈 사이 디스크 변성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공간이 눌린 척추뼈가 기억났다. 무릎의 통증은 노화의 문제도, 관절염도 아닌 신경통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잊고 있었을까.


 처방은 간단했다. 코어 운동, 등 운동 열심히 하란다. 플랭크가 좋고, 운동은 무리해서 뛰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걷는 게 가장 좋다고. 무엇보다 오래 앉아있지 말고 30분에 한 번은 일어나서 자세를 바꾸는 것을 추천한다고.


 이번엔 내 척추뼈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빨리 잊어야 하는 건 글로 쓰지 않아도 마음속에 숨어 기억에 오래 남아있더니, 정작 기억해야 하는 건 왜 없던 일처럼 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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