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 영화를 봤다.
글밥이 많은 추리소설을 오늘은 기필코 다 읽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들고 나온 날이었다. 도서관에 갈까, 카페에 갈까 고민하다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으로 향했다. 책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시간이 맞는 영화가 있다면 볼 생각이었다. 4분의 3가량 책을 읽었을 즈음, 극장 직원이 영화 ‘다음소희’ 입장 안내를 했다. 자극적이기만 한 추리소설은 그쯤이면 나머지는 집에 가서 읽어도 될 것 같았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으나, 아트나인에서 선택한 영화라면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재빨리 티켓을 발권하고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영화 ‘다음소희’에선 비빌 언덕이 없는 특성화고 학생이 등장했다. 그들은 서로 연대하지만, 뿌리가 아직 가늘고 연약하여 서로를 보듬을 온기가 부족해 보였다. 얼어붙은 땅에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까지는 보호해 줄 무언가 없다면, 제 자신이 먹고사는 일도 힘에 부치는 법이니까.
대기업 하청의 콜센터에서 일하던 소희는 어느 날 서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이를 담당한 형사 오유진은 끈질기게 사건을 파헤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비열한 판은 견고하고 치밀하여 꼬리 하나 자르는 걸로는 택도 없다.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서 파헤쳐야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사라질까. 수치와 결과로 판단하는 현실은 무정했고, 돈에 눈이 먼 어른은 비열했으며, 몰랐다는 말로 갈음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허공을 바라보았던 무책임한 어른 사이에서 수많은 소희들은 어디로 내몰릴까. 영화 보는 내내 재작년 특성화고에서 ‘노동인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학생들이, 현장 취업을 앞두고 있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모두 안전하게 취업을 했을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마음에 길게 늘어진 잔상이 삶을 곱씹게 한다.
‘다음소희’의 바탕이 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이 있고 6년이 흘렀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신물 나는 뉴스 속에서 무력함에 빠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오늘도 글을 써본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희…
무엇을 해야 이 세상이 조금 더 밝은 빛으로 남아있게 될지……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은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다짐과 이 글을 읽은 당신의 마음에도 소희의 잔상이 남길 바라며, 영화 '다음소희'를 보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