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대중목욕탕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의 늘어진 가슴은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녀들은 태초에 그런 가슴을 가진 존재처럼 당연하게 혹은 노화가 진행되면 주름이 생기듯 여자의 젖가슴 역시 나이가 들면 늘어지게 되는 그런 성질의 것으로 인식했다.
어느 날 나는 임신을 했다. 아이가 뱃속에 자리 잡고 산부인과에 정기 검진을 다니게 되면 갖가지 교육을 받게 된다. 임신 중 몸의 변화라던가, 출산 전에 준비하면 좋을 아기 물품이라던가 혹은 똑똑한 아기를 위한 태교 방법 같은, 학교에서 정규 교과 과정을 받았다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인데…… 그중 모유 수유에 관한 이야기는 귀를 잡아당기는 듯 조금 더 깊게 다가왔다. 이제 곧 내 가슴에서 젖이 흐른다니, 미지의 세계였다.
출산 교실에서 들은 모유 수유의 장점은 그랬다. 모유가 지닌 풍부한 영양소라던가, 모유 수유를 함으로써 생기는 아이와의 교감으로 인해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던가, 분유 수유한 아기들보다 모유 수유한 아기들의 지능이 더 높아진 결과가 있다던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고로 아이를 낳으면, 젖이 잘 돈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해야 하는 아주 당연한 의무처럼 임신 기간 내내 모유 수유의 장점에 대한 주입식 교육 아닌 교육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모성이란 신성하고 당연히 생기는 감정 같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아이를 마주했을 때, 어쩐지 시아버지를 닮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나는 이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나온 존재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를 닮아야 하는데, 나를 닮은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임신 중에 뱃속에서 꿈틀거릴 때는 에일리언 같은 느낌도 받았었는데…… 분명 내 몸에서 빠져나왔지만 낯선 생명체. 얘가 정녕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그 존재인가.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까지는 2시간을 이어 잔 적이 없었다. 얘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길래, 밤에 잠을 안 자고 악을 쓰며 울까. 고문 같았다. 어느 새벽엔 어르고 달래도 악을 쓰며 울길래 침대에 아주 살짝 던진 적이 있다. (아들, 미안. 네가 좀 까다로웠단다.) 결국 나는 이즈음 수면 교육을 선택하고 이틀 정도 아이와 씨름한 후 평화를 얻었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로 그 존재가 마냥 예쁜 건 아니더라.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와 24시간, 365일 부대끼면서 내 손길이 닿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이 가녀린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과 나를 닮은 생김새가 아이에게 도드라지며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서 모성이 생기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는데, 모유 수유도 모성애의 농도를 높인 하나의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아이를 약물을 쓰지 않고 온전히 제힘으로 낳는 자연 출산이라는 방식으로 물속에서 낳았다. 출산하고 나서는 조리원에 가서 내 아이에게 소젖을 먹이고 싶지 않다며 남들 다하는 분유 수유를 거부했다. 목욕을 시키거나 화장실에 가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신생아실에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밤에도 품에 끼고 잤다. 아이가 울면 어떻게든 젖을 물리고 싶었다.
하지만 젖은 물린다고 바로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나흘 정도 젖이 안 나오는 가슴을 물리다가 결국 아이에게 황달이 와서 대형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피검사를 해야 해서,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아이의 발목에 커다란 주삿바늘을 꽂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바늘이 들어가기도 전에 미친 사람처럼 울어서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밖에 나가 기다리라고 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듣자 마음이 미어졌다.
가느다란 발목에 주삿바늘을 꽂고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병실로 내려가며 그때 처음 젖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엉엉 우는데, 젖이 돈 가슴으로 인해 티셔츠가 축축하게 흠뻑 젖을 때까지 나는 그것이 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그전까지 그런 일이 내 몸에서 일어나지 않았기에, 어떤 상황인지 몰랐던 듯하다. 지금이라면 젖인 줄 알고 부랴부랴 옷으로 숨겼겠지만 말이다. (물론 흐르는 젖이 부끄러워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아이는 안대를 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광선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도착하고 때마침 젖이 흐르기 시작했기에, 입원 기간은 짧았고 무사히 아이를 집에 데리고 돌아왔다. 몸조리는 물 건너갔지만, 그때는 그런 점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이가 건강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출산 이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낯선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초보 엄마에겐 울적함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아이를 돌보는 데 모든 시간을 써야 했다. 게다가 신생아는 젖을 자주 먹어야 해서 온종일 젖을 물리다 보면, 내가 인간이 아닌 젖소 같은 동물처럼 느껴져 처량해졌다.
간혹 그런 침울한 감정이 들었지만,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엄마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으로 오셔서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를 함께 돌봐주셨고, 남편 또한 적극적으로 육아를 함께 했다.
아이를 젖 먹이며 키우는 시간 동안 내 곁에는 엄마와 남편이 있었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덕분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꾸준히 상기시켰으며, 울적함을 제쳐두고 힘을 다해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나는 모유 수유를 끝내길 결정했다. 마침내 모유 수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거 웬걸. 해방의 순간을 기쁨의 춤으로 만끽하려는 순간에 양쪽 가슴이 축 처졌다. 젖을 말린 가슴은 처진 것뿐만 아니라, 한쪽 가슴의 유선이 더 커져 가슴의 크기가 달라졌으며, 유륜의 색은 진해졌고 젖이 돌지 않는 가슴은 탐스럽게 빵빵했던 가죽 주머니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품없이 홀쭉해졌다. 그리고 거울 앞엔 축 늘어진 할머니의 가슴을 소유한 내가 서 있었다.
양쪽 가슴의 크기가 확연히 차이나고 그 생김새가 수유 전과 너무도 달라져서, 유방암 검진을 받으러 들린 유방 외과에서 상담받은 적이 있다.
수유로 인해 처진 가슴은 예전처럼 복원되기 힘들며 외과 수술을 통해 가능한데, 그 방법이란 커진 유륜을 절제한 후 안쪽에서 실로 잡아당겨서 모양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가슴에 보형물도 넣어야 해서 의사 선생님도 굳이 권하지 않는 수술이었다.
나는 첫째 아이를 배고는 15kg, 둘째 아이를 배고는 20kg 체중이 증가했었다. 출산 후 식이조절과 근력 운동으로 임신 전 체중으로 되돌렸지만, 가슴만큼은 무엇을 해도 되돌릴 수 없었다. 나는 외적인 변화에 대해 담대한 편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외적 변화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낳고 기른 후에 산모에게 남는 신체적 변화는 우울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유 수유를 선택했지, 처진 가슴은 선택하지 않았기에, 준비되어있지 않은 채로 당한 일종의 사고라고 느껴졌다. 나는 모유 수유 전에 이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억울한 감정이 생겼다. 수술은 무서워서 못 하겠고. 아니, 출산 교실에서는 왜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지? 모유 수유에 대한 장점은 그렇게 설명하면서, 이런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서는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분유 먹인다고 아이가 잘못되는 것도 아닐 텐데. 선택권은 줘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어느 광고든 부작용에 대해서는 팸플릿 작은 하단에라도 고지하는데,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진 가슴을 보며 아이를 원망하거나 책망하고 싶은 마음은 깃털만큼도 없다. 다만 지난날 나의 무지가 안타까웠을 뿐…….
그래서 아이를 낳을 예정인 다른 동지들에게 고한다.
모유 수유하면 가슴이 처집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예쁜 모양의 가슴에 작별을 고해야 해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젖을 물리는 순간 당신의 아름다운 가슴은
축 늘어진 할머니 가슴이 된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들도 새끼들에게 젖 물리고 나면 젖꼭지도 커지고 가슴도 축 처지는데, 사람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그때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역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나 보다.
분유 수유의 장점으로는 아빠를 포함하여 누구나 아이를 돌볼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와 교감을 통해 아이에게 모유 수유와는 결이 다른 정서적 건강함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가 활동하기에 훨씬 자유롭기에 분유 수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새 세상이 얼마나 발달했는가. 분유도 모유 못지않은 영양소가 있다.
두 어린이를 키우면서 느꼈는데, 아이는 부모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만 한다면, 온종일 같이 있지 않아도 애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란 농밀함도 중요하니까.
늘어진 가슴으로 지낸 시간이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강산이 변할 시간이라지만, 아직도 거울을 보면 내 가슴이 낯설다. 언제쯤이면 늘어진 내 가슴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허나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나의 어린이들에게 내 가슴을 물리겠다. 아기 새처럼 입을 크게 벌려 내 가슴을 물던 초롱초롱하고 순수한 눈망울의 내 아이들이, 그 누구와도 경험할 수 없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내게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니까.
지금은 그 선택에 앞서 처지지 않았던 내 가슴에 작별을 고할 시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