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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Jun 11. 2023

직장생활의 현타

 나는 음주운전을 혐오한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평화로웠던 한 가정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뉴스를 수없이 보면서도,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는 걸 볼 때마다 더러운 세상에 신물이 난다. 술 마시고 운전대 잡는, 잡았던 사람을 보면 ‘실수’와 ‘반성’이라는 단어도 그 입에서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마는데. 이거 웬걸. 직장 생활을 하니 주변에 음주운전을 했던 사람이 많네?


 예를 들자면 여든이 넘은 연로하신 국장님은 어느 날 출입처 사람들과 점심 식사 중 ‘한때 음주운전 많이 했지’라는 발언을 해, 그 자리에 동석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순간 서늘한 분위기를 감지한 영민한 팀장이 ‘요즘은 세상 분위기가 바뀌어 다들 조심하죠’라고 사태를 수습하긴 했으나 아무리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분이라 해도 그렇지. 지난 일이라도 그게 자랑스레 떠벌릴 일은 아닌데, 정이 뚝 떨어짐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국장님의 음주운전 폭탄 고백을 들은 그 날은 어느 구의원의 기사를 쓰게 됐다. 나는 되도록 여야의 균형을 맞춰 기사를 내보내려고 하는 편이다. 한동안 여당 의원 기사가 많이 나가는 바람에 모처럼 나온 야당 의원의 기사를 즐겁게 썼다.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에서 무투표로 당선된 초선의원인데, 언젠가 부의장실에서 부의장과 차담 중 잠깐 얼굴 보고 인사한 기억이 있어, 그간 무슨 일을 했나 궁금했다. 이름 세 글자를 검색하니, 메인 상단에 ‘음주운전’ 기사가 뜬다.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낮 음주운전을 하고 단속되자 2km를 도주했단다.

 봉천동 인근에서 갈지자(之)로 운전하다 단속됐을 당시 혈중알콜농도는 0.1%가 넘었고, 이는 면허취소가 나올 수준이다. 음주운전도 모자라 도주까지 했는데, 의회는 윤리위원회 한 번 열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순간 뒷목이 뻣뻣해지며 내가 이딴 인간의 기사를 쓰려고 회사 다니나 싶어 회의감이 크게 들었다. 내가 음주운전한 사람과 웃으며 악수하고 인사를 한 것도 꽤나 불쾌하고. 이게 단지 나만의 배신감일까.



 요즈음 내 회사생활은 불합리의 연속이다. 이론대로라면 불합리한 것에 하나씩 다 따져야 하는데, 작은 회사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으니… 툭하면 ‘때려치울까?’를 내뱉으면서도, 아침이 되면 나는 ‘커리어’와 ‘미래’를 저울질하며 출근길에 오른다. 그럴 때마다 노동인권 프로젝트를 함께 한 학생들이 떠오른다.  당장 생계 걱정이 없는 내가 이러한데, 어디선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불합리함을 참고 버티는 학생들이 소리 죽여 울고 있을까 봐, 내가 직장인으로 묵과하는 매 순간이 못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타협해야 하는 걸까.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회사가 싫으면 회사원이 떠나는 법이니까. 적당한 순간을 계속 곱씹는다. 이렇게 주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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