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열매

Vincent Charlot, Clos des Futies 2009

by 전주영


자극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새빨간 홍옥과 같은 새콤한 향이 코끝을 잡아 집중하게 했다면, 입안에 사륵 퍼지는 솔티드 카라멜과 같은 눅진한 달콤함은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단숨에 온몸의 긴장을 풀리게 했다.

뒤이어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하얀 복숭아가 되어 손안에 놓였을 때, 움켜쥐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복숭아를 좋아했던가? 몸에 차가운 감각이 남는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즙이 흐르는 복숭아란 껍질을 벗겨내는 순간부터 손은 물론이요, 그 즙이 손목까지 흐르기도 하여 닦아내기 귀찮은 그런 과일인데…… 이런 욕망은 갑자기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그런 것들이 있다. 마음을 제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들. 세상엔 호기심을 이끄는 위험하고 매력적인 무언가가 방심하고 있을 때 튀어나온다. 마치 작은 파란 악마들이 웃으면서 손을 맞잡고 뱅글뱅글 춤을 추며 ‘이럴 줄 몰랐지’라고 외치는 것처럼.

나는 대체로 그런 유혹에 굴복하는 편이다. 처음부터 마음을 흔들기보다는 서서히 흔들어서, 정신 차려보면 이미 깊숙하게 빠져버린 뒤라 굴복하지 않을 다른 방도가 없다.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주인공 아름은 그랬다. 가져본 걸 그리워하는 사람과 갖지 못한 걸 상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불행한지 모르겠다고. 그는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전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상상하며 그리워하느니 한 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겠다. 뒷일은 어떻게든 수습되겠지. 깊은 괴로움이든 얕은 괴로움이든. 별반 차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입술에 묻은 샴페인을 혀로 핥으며…… 이미 형체를 알 수 없도록 으스러졌지만, 달큼함에 취해 한 번 물꼬를 튼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과육은 선연한 향을 풍기며 깊고 어두운 내면까지 스며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금단의 열매가 서늘하고 푸른 달빛 아래 어떤 싹을 틔울지 궁금해진다.




Vincent Charlot, Clos des Futies Millesime Extra Brut 2009


지역 : France> Champagne

품종 : 50% Pinot Noir, 50% Chardonnay

테이스팅 노트

샴페인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포도나 베이스 와인을 사들여 대규모로 샴페인을 만드는 네고시앙 마니쁠랑(Negociant Manipulant‧NM)과 자신이 직접 기른 포도만 사용해 소규모로 생산하는 레꼴땅 마니쁠랑(Recoltant Manipulant‧RM)으로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집니다. RM 생산자들은 생산 비용에 연연해하지 않고 숙성을 규정보다 길게 하는 등 장인정신이 깃든 다양한 방법으로 최고의 샴페인을 빚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중 뱅썽 샬로(Vincent Charlot)는 RM 샴페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샴페인 하우스 샬롯 따누(Charlot Tanneux)를 이끄는 ‘괴짜’ 생산자입니다.

그에게 ‘괴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포도즙 사용 방법이 다른 생산자와 다르기 때문인데요. 보통 생산자들이 압착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첫 번째 포도즙(뀌베‧Cuvee)를 주로 사용한다면, 뱅썽 샬로는 부드럽게 압착해서 짜낸 두 번째 포도즙(따유‧Taille)를 중심으로 사용합니다.

포도의 껍질과 씨앗에는 항산화물질로 알려진 폴리페놀과 타닌이 많이 포함되어있는데, 압착할 때 씨앗까지 우러나면 쓴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보통의 샴페인 하우스는 첫 번째 포도즙을 사용하죠. 하지만 샬로는 씨와 껍질에서 나오는 성분이 와인 양조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에 따유의 비율을 늘리는 대신 씨앗의 쓴맛을 해결하기 위해 포도 수확을 늦게 한다고 합니다.

씨앗이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확하기에 그의 포도의 따유는 다른 NM 샴페인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성 있는 샴페인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포도나무 한 그루당 평균 3병의 샴페인이 생산되는데, 뱅썽 샬로는 한 그루에 1병만 나올 정도로 응축된 포도를 사용한다고 해요. 또한 샬로의 샴페인은 화학, 비료, 농약,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자원을 활용하여 포도를 재배하는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농법으로 자연주의 샴페인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마신 끌로 데 뿌티(Clos des Futies)는 0.18ha의 아주 작은 포도밭에서 나오는 포도로만 빚는 샬로 따누의 최상급 샴페인입니다. 연간 2400병 생산된다고 하는데, 제가 마신 2009 빈티지는 817병 생산되었습니다. 병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어 오픈하기 전부터 무척 기대했는데요. 저는 버블이 강하고 산미가 있는 자극적인 샴페인을 좋아하는 데 반해 끌로 데 뿌티는 버블이 금방 사라지고 부드러운 느낌과 녹진한 느낌이 혀를 감쌉니다. 피니쉬에 쌉쌀한 맛이 살짝 감도는 것은 따유의 비율이 높아서겠죠? 엑스트라 브륏이지만 최대한 늦게 수확하는 그의 양조 방식 때문인지 당도가 꽤 느껴졌습니다. 여러 향과 맛이 조화를 잘 이루어 입안에 긴 여운이 남는 훌륭한 샴페인이었어요. 연간 최대 2천 병이 나오는 샴페인은 제 능력으로는 구하기 어렵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꽤 오래 그리워할 듯한 그런 샴페인입니다. 이런 샴페인은 두고두고 그리워할지라도 일단 마시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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