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강제추행 고소장 접수 후 10월 약식명령 받기까지
연초 '강제추행'으로 고소했던 사건이 이제 끝이 보인다.
검찰이 벌금 300만원 약식기소했고,
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성폭력교육 40시간 이수명령으로 약식명령을 내렸다.
내가 고소한 피고인이 정식재판청구를 하지 않으면 사건은 이렇게 확정돼 끝난다.
1월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종결을 앞둔 10월까지 처음 겪는 일에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많았다.
검찰이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내려 사건이 그대로 종결될 뻔했을 때는 심리적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고 검찰에 송치했을 때는 피의자의 혐의가 인정됐다는 확신이 들었고, 범죄피해평가전문가가 작성한 범죄피해평가보고서에도 내 진술에 힘이 실려, 나는 당연히 기소될 것으로 생각했다가 매우 당황했다.
황망한 마음을 추스리고 항고해 고등검찰청에서 재기수사명령을 받아내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건 진행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불편했다.
"썸 타는 사이였어?"라는 말은 가까운 친구에게 들어 놀랐다. '객관적 판단'이라는 미명 아래 피해자의 상처를 칼로 쑤시는 말이었다.
평소 서로 주고받은 연락이 있든, 단둘이 만나 식사를 했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하고, 응하고 서서히 이뤄지는 그런 일을 우리는 썸이라고 표현할 텐데, 그런 일이 있었다면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저런 말을 들었으니, 주변 사람들이라고 크게 달랐을까 싶다.
그런 수치심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사건을 진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우선 내 스스로가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왜 그 시간까지'
'왜 그 장소에 있어서'
'왜 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내지 못했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피해자는 나인데, 어쩐지 내가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 벌어진 일인 것 같았다.
사건이 발생한 당일 오후 경찰서에 가 고소장을 접수하고, 저녁에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때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내게 실망하면 어쩌지. 마음 한편에서 '아니, 내가 피해자인데 왜?'라고 울부짖어도, 현실이 그랬다.
남편은 내게 단 한마디도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괜찮은지 물었을 뿐이다.
그게 이 사건을 여기까지 끌고 오기까지 많은 힘이 되었다.
강제추행은 대충 똥 밟았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신년회 모임이어서 취한 상태였고, 명확한 증거도 없고,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린다는 건 피해자에게도 상당한 수치심을 주는 일이었기에... 성추행 신고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살면서 이런저런 성추행을 적잖이 당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직장에서, 모임에서 등 여자로 살면서 종종 벌어지는 일들. 그런 일들은 '순간' 벌어진다. 당혹스럽고 불쾌하지만, 어디선가 배운 것처럼 당차게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날들을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내 딸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재수 없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고소를 결심하지 않았을까.
사건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록을 다시 해볼 생각이다.
경찰 조서 작성부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할 건 없다.
더러운 똥은 치워야지. 피할 것이 아니다.
사건 종결을 앞두고,
피고인에게 벌금형이라는 전과도 남기고, 벌금도 내게 하고, 성폭력교육도 받게 할 것이지만,
나는 여전히 길에서 피고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마주하면 흠칫 놀란다.
나는 피고인으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일상의 시간을 쪼개 경찰서와 검찰청을 오가고, 변호사를 만나고 여러 날과 시간을 허비한 것에 비해 허탈하기 그지없는 일이기도 하다.
피고인은 내가 사건 당일 메신저로 추행에 대해 따져 묻자 스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만약 그랬다면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만 했다. 그 이후로 어떠한 사과도, 연락도 하지 않았다.
반성할 인간이라면 그런 추행도 하지 않았겠지만, 여전히 와인 동호인이 가장 많은 카페에서 모임을 주최하고 자신의 와인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진 않을지 심히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