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이 오지 않아 늦게 잔 탓일까,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무거웠다. 깊은 새벽 무렵, 위경련이 와서 선잠을 잔 탓도 있을 것이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날의 새벽엔 어김없이 찾아오는 위의 통증은 파도와도 같다. 파도처럼 고통이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통증이 잠시 사라진 틈의 정적은 그다음 고통을 더욱 강력하게 느끼게 만든다. 거친 파도처럼 위를 거세게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파도가 사라진 순간 모래밭에 혼자 남겨있는 듯한 쓸쓸함. 다행히 이번 위경련은 짧아서 동틀 무렵엔 잠들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있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집에서 뭐라도 하며 알차게 보내려던 오전 계획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이미 정오가 지나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약간의 회의를 느끼며 그간 축적된 피로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부터 허투루 보내는 시간에 대해 경계하게 됐을까? 오늘의 늦잠은 몸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내 몸의 신호에 대해 주의 깊게 듣고 있던 것일까?
침대를 박차고 거실로 나왔다. 창을 열어놓은 거실은 후텁지근하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공기. 구름이 숨겨놓은 태양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햇살을 잠깐 보여줬다 사라지곤 비를 흩뿌린다. 차라리 주룩주룩 시원하게 내릴 것이지.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창을 여닫으려 왔다 갔다 움직이려니 귀찮다.
어릴 때는 비 내리는 날이 싫었다. 빗길에 젖는 신발도 싫지만, 몸에 축축한 무언가 닿는 게 몹시 싫다. 특히 머리를 감고 나면 목덜미에, 등에 닿는 젖은 머리카락이 싫어,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감싸 봉쇄를 한 다음에야 머리를 들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사용한 수건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쓰는 걸 꺼린다. 특히 얼굴을 닦는 수건의 경우엔 늘 뽀송뽀송한 수건을 고집하는데, 건조기를 사고 나서 신세계를 만났다. 장마철에도 문제없이 빨래할 수 있게 되었고, 따뜻하게 잘 구워진 수건을 얼굴에 묻으면 짜릿함마저 느낀다. 건조기 만든 사람은 칭찬해줘야 한다.
입맛이 없었지만, 항생제를 먹고 있던 터라 식탁에 있던 아몬드를 한 줌 쥐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린다. 인간은 왜 세 끼를 먹어야 하는 걸까. 느릿느릿 식사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세 끼를 다 먹으려면 하루를 온종일 소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첫 끼를 해치우고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를 틀었다. 흐린 날이면 라흐마니노프를 종종 듣곤 한다. 18세의 여린 소년의 어딘가에서 저런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까. 걷잡을 수 없이 그의 연주에 빠져들다, 그의 우승 소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해맑게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면 좋으련만, 우승의 기쁨보다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그의 말이 나는 쌉싸름하다. 이것이 천재와 일반인의 차이려나. 한낮에 일어난 중년의 여성은 민망함을 묻으려 재빨리 다른 놀이를 찾기로 한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오늘 할 일을 살펴본다. 급하게 처리할 일은 없어, 마음 편히 본격적인 놀이에 시동을 건다. 누군가 추천한 틸다 스윈턴 주연의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가 떠올랐다.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특정한 사람의 팬이었던 적은 없지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좋아한다. 틸다 스윈턴은 좋아하는 배우다. 그녀의 연기는 마른 장작처럼 건조하고 단단하다가다도, 어느 순간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촉촉하고 매끈한 감정을 드러내어 사람을 놀라게 하곤 한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영화는 대부분 시나리오가 좋았다.
간략한 감상평을 하자면 틸다 스윈턴은 여전히 연기를 잘했고, 오히려 처음 본 배우인 에즈라 밀러의 연기가 인상 깊어 신선했던 영화였다. 눈빛으로 말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은데, 그의 눈에는 깊이가 느껴졌다. 고독을 아는 눈. 어린 나이임에도 그의 지난 삶에는 무엇을 갈망하며 지냈을까, 궁금해지던 새카만 눈동자. 피가 튀기지 않지만 무서운 스릴러라고 하던 누군가의 호들갑과는 다르게 특별히 무서울 건 없었다. 무섭다기보다 인간이 가진 내면의 공허함과 포기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서글픔이 느껴졌다. 인정받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삐뚤어진 욕망. 인간은 어쩌자고 이렇게 유약한 존재일까.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니 오후 세 시가 지나간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중간에 멈출 수 없으니 집중해서 보게 되는데, 집에서 보면 이런저런 일을 하며 영화를 멈추느라 늘 러닝타임보다 시간을 더 들여 보게 된다. 어떤 면에선 편하지만, 집중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불편한 점이 더 크다.
이제 일이라도 좀 해볼까 숨을 돌리고 있는 참에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누군가 올린 글에 내 사진이 떡하니 걸려있단다. 무슨 사진? 머릿속을 재빨리 더듬어본다. 이상하다. 최근 사진 찍은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확인해보니, 지난 주말 동호회 모임에서 찍힌 사진이다. 나는 찍히는 줄도 몰랐는데, 언제 찍은 거지? 그것보단 왜 자신의 글에 내 사진을 내 동의 없이 올린 것일까. 일단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사진을 내리기 위해 글 작성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늦어진다. 그 와중에도 내 사진이 담겨있는 글의 조회수는 올라가 나는 초조해진다.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 글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한숨을 돌린다.
어둑어둑해진다. 급격하게 피곤함이 느껴져 간식 상자에서 초코파이 한 개를 꺼낸다. 초코파이를 베어 물고 우물거리는데, 위에 통증이 느껴진다. 오늘 새벽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오늘은 집에만 있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