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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찻잔 Feb 26. 2022

모여봐요 소로의 숲

월든에서도, 디지털 무인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현대인의 구원

코로나로 지쳐가던 많은 이들은 2020년 발매된 닌텐도 사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이하 동숲)>에 열광했다. 나 또한 미친 듯이 빠져들었는데,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한 건 작년 추석 즈음, 전 직장 상사와의 말도 안 되는 갈등이 서서히 표면화되던 시기였다.


당시 내 꿈은 제프 베이조스 같은 억만장자가 되는 것도, 하정우와 결혼하는 것도 아니었다. 슬프게도 내가 바라던 것은 많지도 않은 소유물을 전부 버리고 아무도 날 찾을 수 없는 작은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어 자매님들과 허브 농사를 지으며 고요한 봉사의 삶을 보내는 것이었다.


비슷한 열망은 대학원 시절에도 강력한 인력으로 날 끌어당겼다.  배움의 고통이 끝나고 나서야 그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전 상사에게 신체적으로 해악을 가하는 것도 내 열망 중 하나고, 아직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고 싶다는 충동과, 내면의 평화를 되찾고자 하는 희망 사이 고장 난 메트로놈 바늘처럼 진동했다. 어찌나 감정 기복이 심했던지 실제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인간은 물론  인간을 그렇게 만든 현대 사회의 다양한 적폐와 수많은 과잉, 결핍들을 향한 병적인 반감이  자연스레 자연과 자급자족, 그리고 자기 성찰의 세계로 이끌었던  같다. 물질주의와 끝없는 욕망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던 나에게 동숲은 거의 완벽한 돌파구를 제시했다.


모동숲은 닌텐도의 <동물의 숲>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2020년 3월에 공개되었다.  <동물의 숲>의 첫 번째 게임은 무려 2001년에 발매되었다.


동숲은 너구리들이 플레이어에게 무인도 이주 패키지 구매를 부추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자급자족과 공동체 생활, 자연과의 교감을 꿈꾸며 비행기에 올라탄 나를 맞이하는 건 열악한 텐트와 너굴 사장의 간악함이었다. 정착 초기 이주와 비행기 삯을 빌미로 빚을 지게 한 후 집을 짓거나 확장해 나갈 때마다 이 뚱뚱한 너구리는 나에게 빚을 지게 했는데, 이는 다단계나 범죄조직의 수법을 연상시킨다….


뭐, 빚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우리 인생 모든 부분이 그러한 것 아닌가! 플레이어는 나무를 모아 의자와 침대를 만들고, 주민들을 위해 기반시설을 마련하고, 심지어 공동체의 지적 성장과 문화 발전을 위해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건설할 수 있다.


의식 고양과 지식 습득을 위해 주민들이 우리 섬의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다.


현대인은 세상과 과도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분리되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재료로 조립된 간편식을 먹고,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자본이라는 기계 속 하나의 부품이 되어 일하면서 정작 옆집엔 누가 사는지 모르는 우리에게 동숲은 완전히 반대되는 생활양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동숲은  안에서 얻은 재료로 내게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고, 수렵과 채집으로 자급자족하며, 건강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도록 면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  또한 이런 충만한 삶의 가능성에 매료되어  무인도에서 동물 주민들과 많은 시간을 냈고, 금세  자릿수 플레이 시간을 기록했다.


소박한 자급자족의 생활을 통해 삶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것, 어제와 내일이 아닌 오늘을 온전히 사는 것... 동숲 속 무인도 생활은 필연적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오르게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동숲에서 보트 투어를 책임지고 있는 갑돌이와 생일(7월 12일)이 같을 뿐 더러 불만 가득한 입매도 미묘하게 닮았다.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약 2년간 뉴잉글랜드의 ‘월든’이라는 호숫가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월든, 또는 숲 속의 생활> (이하 <월든>)을 썼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물건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물건에 소유당해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소로의 문제는 그가 좀.. 비호감이었다는 거였다. 기행을 일삼는 하버드 졸업생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남의 깔보는 듯한 그의 태도나 덥수룩하고 조금 너저분한 겉모습, 그리고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다른 이를 향한 이해와 배려의 부재 때문에 <월든>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으로 소개되곤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상속받은 농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뉴잉글랜드의 몇몇 주민들을 보며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소로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책임들(예를 들어 부양해야 하는 가족..)을 너무 편리하게도 고려하지 않는다.


애초에 <월든>의 초판 1000부 중 실제 판매 부수는 200권 남짓이었다고 하니, 당시 기준으로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셈이다. 반면 <동물의 숲> 프랜차이즈는 약 20년 간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사랑받으며 닌텐도 사에게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은 하버드 샌님에게 장황한 설교를 듣느니 차라리 어딘지 귀여운 구석이 있는 너구리에게 빚을 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방증하는지도 모르겠다.


귀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ㅏㅏ


어쨌거나 동숲이나 <월든> 모두 사회에 대한 피로감이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유에 집착하며 진실된 교감이 불가능한 현실을 비판하고 타계하기 위해 소로가 월든 호수를 찾았던 것처럼 나 또한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나 게임 속 무인도에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운이 좋은 밤엔 우리 섬의 감자 농장 앞 돌다리 위에서 오로라를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동숲과 <월든>의 또 다른 공통점은 이런 삶의 방식이 언제까지나 '나'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나는 언제든지 전원을 끄고 무인도에서 나올 수 있다. 소로 또한 그가 원할 때 월든 호수를 떠날 수 있었고, 정말 2년 후 그곳을 떠났다. 심지어 소로가 살던 부지는 소로의 후원자 소유여서 그는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소로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난 남의 도움 없이 내 도끼와 잠자리채, 낚싯대, DIY 작업대로 너굴 사장에게 진 빚을 다 갚았으니까!


언제든지 게임을 그만둘 수 있고, 호숫가를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무인도와 월든 호수 옆 오두막에서의 삶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비쳐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에서의 삶은 환상적인 가능성일 때에만 지친 사람들을 위한 위안으로서 기능하며 일상이 될 때 매력을 잃기 때문이다.


선택과 생존, 혹은 환상과 일상의 간극은 우리 아빠(…)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많은 아재들을 한동안 설레게 한 <나는 자연인이다>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ㅇㅂㅇ..?


나는  프로그램을  때마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내가 ‘자연인'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트인 산의 풍경과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지,   없는 약초주가 담긴 플라스틱 병에 쌓인 먼지나 흙먼지로 꼬질꼬질해진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로 보여지는 그의 생존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사람과 사회가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에서 오는 피할  없는 피로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소유와 욕망을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며 소로의 책은 물론 닌텐도 스위치와 동숲 게임 팩을 구매한 나는 오히려 현대 물질문명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이바지한 것일까? 일탈의 상상이 지닌 체제전복적인 힘은 사실 거대 자본에 맥없이 삼켜지는 운명인 걸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곱씹으면서 난 오늘도 엉성한 도끼와 삽을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를 찾으러 하염없이 무인도를 거닌다.



*<월든>에 대해 더 찾아보다가 몇 년 전 USC의 Game Lab에서 학생들이 <Walden, A Game>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스팀에서 계속 판매를 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소로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게임은 생각보다 평이 높은데, 소로를 향한 시대를 넘는 찬사인지 최후의 모욕인지 우린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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