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개월 동안 글을 썼을 때는 매일 양질의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꼈고, 글을 쓴 지 6개월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머릿속에서 잡다한 생각이 날아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1년째가 되어가는 지금은 상당히 자존감이 높아졌고, 인간관계까지 매끄러워 외부의 영향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스스로 이런 표현을 하기엔 낯부끄러울 수 있는 말일지라도 사실이다. 정말 믿기 힘든 수준의 변화를 느끼는 중이다.
다시 학창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서 얘기를 마저하면, 난 어딜가나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듣던 사람이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원래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하던 당시엔, 그 생각이 단순 잡념들로만 가득 찬 게 아니었다. 물론 쓸데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행복 회로를 돌려서 도출된 망상 같은 성공 계획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로'와 '대인관계'에 관한 고민이었다. 이에 관한 깊은 사색과 생각으로 도출된 맞춤형 솔루션을 그냥 떨쳐버릴 수 없어서 늘 머릿속에 부여잡고 있었다. 한번 놓치면 날아가 버리는 풍선 같았던 나의 해답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애쓰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외부 자극에 예민한 반응까지 보이게 된 거였다.
글을 쓰기로 한 뒤부터는 곧바로 이런 해답과 아이디어를 모두 메모해두었다. ‘포스트-잇’과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일일이 기록해두었는데, 이제 머릿속에 더 이상 애쓰며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까 이는 별 효과가 없었다. 정형화되거나 논리 없이 단순 결론만 도출된 메모는 내 생각과 그 근거를 충분히 저장할 수 없었고, 다시 그 메모를 찾으려 했을 때 쉽게 찾아서 원하는 정보를 골라내기도 어려웠다. 무작정 기록으로 남겨두던 대안은 다시 꺼내보기 힘든 메모량만 늘여 놓았다. (저장된 메모들은 삼성 갤럭시의 동기화 기능 덕분에 아직도 내 핸드폰에 모셔져 있다.)
학창 시절을 다 보내고 재수까지 하고나서는, 모델 생활을 하면서 자기 계발서를 질릴 만큼 읽었고, 나중에는 작가들의 감성 수필집도 읽게 되었다. 작가 수필집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느낌과 수필에서 언급된 상황과 비슷한 나의 상황에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지만, 동시에 세부적인 감정이나 그 원인이 다른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나를 위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도서를 읽으며 얻은 지식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매일 내 입맛에 맞는 에세이를 썼다. 항상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엔 ‘나’ 스스로와 솔직한 대화를 하며 감정과 생각을 진솔하게 써 내려갔다. 가득 늘어난 메모량과 작가들의 수필집을 참고하며 글을 썼더니 머릿속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깊은 생각들이 조금씩 나름의 논리를 갖추어 에세이에 잘 저장되기 시작했다. 특정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를 기록하고 내 다짐과 스스로에 대한 위로, 응원의 메시지도 함께 기록해두었다.
이는 몇 개월 뒤 나만의 백과사전이 되었고,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비슷한 사건을 겪었던 날짜와 특정한 단어를 스마트 폰 메모장에서 빠르게 검색해 찾아 읽으며 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가령 친구와 트러블이 생기거나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이유로 너무 힘들 때, 나만의 대인관계 철칙과 그 근거를 잘 정리했던 글을 읽거나 실패 후 다시 마음을 다잡았던 과거의 내 모습과 당시 깨달음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을 찾아 읽었다.
이렇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기록하고 무언가를 배워내며, 그 깨달음을 기록해 놓았더니 더 이상 머릿속에서 떠나갈 듯한 풍선을 붙잡고 있을 이유도 없었고, 각 분야의 지식과 내 고민의 흔적이 잘 분류되어 각각의 방으로 맞춰 들어갔다. 덕분에 이제는 잡념이 떠올랐을 때,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상상인지 메모해야 하는 아이디어인지 구분할 수 있다. 메모해야 할 아이디어라면 예전처럼 애쓰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비슷한 정보가 담겨있는 방으로 분류되는 느낌이다. 이젠 몇 동 몇 호에 어떤 생각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원하는 정보를 쉽게 떠올릴 수도 있다.
이는 곧 내 성격을 원만하고 여유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었고 자연스레 대인관계도 보다 좋아졌으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