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동네에 갑자기 외제차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집 근처 세차장에 외제차나 비싼 국산차들이 많아졌음을 눈치챘다. 그런 차주들에게 사업가인지 직장인인지, 직장인이라면 어느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사업가라면 무슨 사업을 하고 있고 초기 자본금은 어떻게 모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질문지를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공부는 안 하고 딴짓거리 한다거나,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날로 먹으려는 태도가 아니냐는 복싱장에서 만난 형의 말에 기가 죽어서 질문지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버렸었다.
중학생 때부터 대입과 취업을 염두에 두며 공부했다. 그리고 취업난이 심하다는 뉴스를 6학년 때 처음 접했는데, 고등학생 때까지 듣다 보니 차라리 내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사업을 하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서 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내 사업을 하는데에 과연 대학 졸업장이 필요할까?" 앞으로는 실력주의가 도래할 것이며, 국내 기업체도 외국계와 마찬가지로 공채를 없애고 상시채용으로 경력자와 실력자만 원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부자들과 리더들이 강연과 책을 통해 앞으로의 사회 모습을 말하고 있다. YOLO부터 시작해서 꿈을 찾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 유튜버 등등 사회의 흐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회사 안 다니고, 대학도 안 가고 알바하면서 돈 모으고 1년에 절반은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나는 재수까지 한 끝에 대학 입학을 보류해두고 모델과 배우라는 진로를 선택했다. 모델로 시작해서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쪽 분야를 조금 경험해보고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나서 대학에도 발을 걸쳐두게 되었다.
친구들은 모델을 하던 나에게 늘 부럽다고 말했다. "나도 너처럼 키만 컸어도 모델하면서 편하게 돈 벌 텐데,, 나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네가 부럽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 딱히 뭐라 답하지 못했다. 그냥 속에 있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이 당시에는 많이 부족했던 탓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했던 생각은 “난 너희가 버린 1가지를 취하고 99가지를 포기했지만, 너희는 꿈이라는 1가지를 포기하고 나머지 99가지를 선택한 거다”와 “연예계는 생각보다 돈 잘 벌기 쉽지 않다” 였다. 연예인은 유명해져도 돈을 벌기까지는 인기와 상관없이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으며, 한번 터져서 유명해진 인기를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23살 먹을 때까지 독학 재수와 각종 아르바이트에, 특이한 알바와 모델, 번역, 학원 중등 영어 강사, 아웃렛 보안팀, 원자력 발전소 정비 보조원 등등 많은 경험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봤다. 23살 미필에 대학교 1학년 1학기만 다니고 그 마저도 모든 학점 F를 받은 나는 이제 가슴속 울림만 따르는 여정을 종료하려 한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야 함을 깨달았다.
확실히 대학을 나오는 게 선택지가 더 많이 있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대학 졸업장이 그냥 이면지 만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테지만, 2035년에 38살인 나는 그때까지 내 안위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기에 대학을 다시 가기로 결정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을 잘 찾아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서 좋았다. 그리고 내가 뭘 잘하는지도 이번 여행을 통해 훨씬 많이 알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그랬다. '여행이란 특정한 계획을 가지고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떠나서 뜻밖의 무언가를 배우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이번 여행 덕분에 뜻밖에 자기 이해가 많이 높아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위해 포기해야하는 나머지 99가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점점 힘들게 했다. 시간이 더 흘러 경제력을 스스로 갖춰야 할 나이가 되면 이 짐은 더 커질 것이다. 나는 이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가장 큰 게 내 건강이다. 난 건강이 너무 안 좋다. 평발이 정말 너무 심해서 일반적인 일을 남들처럼 할 수 없기 때문에 꿈을 끝까지 좇으며 아르바이트하고 공사판 가고, 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하며 버틸 기본 신체 조건이 안된다. 여러가지 알바를 해보면서 몸소 느낀 바다.
대신에 '1가지를 위해 99가지를 포기'하고 얻은 내공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최대한 파이프라인을 늘이려고 노력할 거다. 지금은 이게 내 최선의 선택지다. 또 욕심부리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잡으려 는 과오를 저지르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학생과 모델로써 제대로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해서 2019년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날려먹었고, 대신 이 시기에 책을 많이 읽고 나 스스로를 많이 알게 되었다. 어차피 긍정적 에너지를 이용해서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내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과 나누는 게 나의 궁극적 목표임을 감안하면, 파이프라인을 많이 만드는 게 대학 졸업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성적을 관리하면서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건 당연히 어렵겠지만, 나는 충분히 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첫 번째 파이프 라인은 내 글쓰기다. 몇몇 분들은 지금 내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매일 글을 쓰는 게 대단하다고도 하는데, 난 글 쓰는 과정 자체를 정말 즐기는 사람이다. 좋아서 그냥 쓰다 보니 매일 쓰고 있었고, 매일 쓰다 보니까 효과가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매일 쓰려고 한다. 딱히 어떻게 쓰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수 없다. "그냥" 쓰는 거다.
‘과정을 즐길 수 있는가?’ 이 물음이 지금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과 사회 초년생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모델이나 배우로 성공하는 과정을 나는 즐길 능력이 없고, 해당 길을 걷기엔 내 열정만으로 안 되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대학 성적은 열심히 협조만 하고 주는대로 받을 거다.
내 눈 앞의 첫 번째 해결 과제는 성적도 아니고 수입도 아니다. 일단 글쓰기로 첫 번째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월 10만 원의 인세 수익. 이게 내 첫 번째 목표다. 그 다음엔 글쓰기로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그리고 또 다른 파이프라인을 찾아서 월 10만 원,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이렇게 내가 운영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가능한 많은 파이프 라인을 구축해 갈 거다.
이번에 복학하면 살게될 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궁금하다. 그게 어떻든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 거 같다. 어차피 눈만 가리면 세상도 전부 칠흙으로 만들 수 있는 거니까, 나 하나만 태도를 바꾸면 살기 편해진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