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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짜 일은 무엇인가?" 실무가 아니라 레버리지하라

28. 창업가에서 CEO로의 진화: 진짜 내 일은 무엇인가?

by jaha Kim

창업가의 대화설계 (Founder's Talk Design)

Part V. 내면의 대화 다스리기 - 모든 단계의 창업가


28. 창업가에서 CEO로의 진화: 진짜 내 일은 무엇인가?



실무를 놓는 것은 도태가 아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손을 비우는 가장 어려운 '승진'이다.


이전 챕터에서 우리는 임포스터 신드롬이라는 내면의 불안을 다스렸다(27장). 이제 창업가는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을 마주한다. 바로 '역할의 상실'이다. 회사가 10명일 때 당신은 최고의 개발자였고, 최고의 영업사원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50명, 100명으로 커지면서 당신의 달력은 '미팅'으로 가득 찬다. 무언가를 직접 만들지 못했다는 공허함, 실무에서 멀어지는 불안감. 이 챕터는 '실행자'의 옷을 벗고 '경영자'의 옷을 입어야 하는 창업가의 정체성 혼란을 다루는 내면의 대화다.




1. 이 대화, 왜 피하고 싶고, 왜 피할 수 없는가? (The Inescapable Conversation)


"오늘 하루 종일 뭘 한 거지?"

퇴근길 차 안, 하루를 복기해 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 단위로 쪼개진 미팅을 소화했다. 채용 인터뷰, 예산 검토, 파트너사 미팅, 팀장 면담... 쉴 새 없이 떠들고 결정했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하나도 없다. 코드를 짠 것도 아니고, 디자인 시안을 만든 것도 아니다. "나 오늘 일한 거 맞나?"라는 자괴감이 든다. 과거 밤새워 제품을 만들 때 느꼈던 그 짜릿한 성취감은 사라지고, 자신이 회사의 짐짝처럼 느껴지는 공허함만 남는다.


'실무'라는 안전지대로의 도피

이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창업가는 다시 실무로 도피한다. 마케팅 문구를 직접 수정하고, 개발 코드를 리뷰하겠다며 밤을 새운다. "역시 내가 해야 빨라"라며 안도감을 느끼지만, 사실 그것은 경영자로서의 직무 유기다. 당신이 실무를 붙들고 있는 동안, 회사의 5년 뒤 미래를 그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병목이 된 리더

이 대화를 회피하면 창업가는 조직의 가장 큰 병목(Bottleneck)이 된다. 모든 실무가 당신의 손을 거쳐야만 진행된다면, 회사의 속도는 당신의 체력 한계에 갇힌다. 당신이 실무자로서 유능할수록, 회사의 성장은 더 빨리 멈춘다. 이 대화는 개인의 성취감을 포기하고, 조직의 성과를 선택해야 하는 뼈아픈 성장의 통과의례다.




2. 오해와 착각: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함정 (The Founder's Fallacy)


"현장을 떠나면 감을 잃는다"는 공포

많은 창업가가 "스티브 잡스도 픽셀 하나까지 챙겼다"는 신화를 오해한다. 그들은 디테일을 챙기는 것과 마이크로매니징(Micro-managing)을 혼동한다. 현장을 안다는 것이 모든 실무를 직접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무에 파묻혀 있으면 오히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되어, 거대한 시장의 변화를 놓치는 '근시안적 리더'가 된다.


"관리는 일이 아니다"라는 편견

창업가는 본능적으로 '메이커(Maker)'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라 믿는다. 그래서 사람을 조율하고, 문화를 만들고, 비전을 전파하는 '관리(Management)'의 영역을 '가짜 일' 혹은 '관료주의'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면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100배 더 중요한 일이 된다.




3. 대화의 재설계: 핵심 원칙과 프레임워크 (The Core Principle & Framework)


"나는 더 이상 '연주자'가 아니다 '지휘자'다"

이 대화의 핵심 원칙은 "자신의 기여 방식을 '직접 산출(Output)'에서 '타인의 레버리지(Leverage)'로 전환하는 것"이다.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 소리에 집중하지만, 지휘자는 전체의 조화와 흐름을 듣는다. 당신이 직접 소리를 내지 않아도, 당신의 지휘로 인해 오케스트라가 웅장한 음악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성과다.



CEO를 위한 '3D' 프레임워크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을 '내가 무엇을 했나(Do)'에서 다음 3단계로 확장하라.


1) Decide (결정): "나는 오늘 어떤 '방향'을 정했는가?"

실무자에게 생산성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경영자에게 생산성은 '하지 않을 일을 정하는 것'이다. 100개의 이메일에 답장하는 대신, 회사의 1년 뒤를 좌우할 단 하나의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데 당신의 가장 맑은 정신을 썼는지 자문하라.


2) Design (설계): "나는 오늘 어떤 '시스템'을 만들었는가?"

반복되는 문제에 직접 뛰어들어 '해결'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 문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채용 기준을 바꾸고,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조직 문화를 다듬는 '구조적인 설계'에 시간을 투자했는지 확인하라.


3) Delegate (위임): "나는 오늘 누구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는가?"

위임은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여 팀원을 리더로 키우는 행위다. 내가 돋보이려 하지 말고, 팀원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뒤에서 어떤 구체적인 지원(Support)을 했는지 점검하라.




4. 실전 플레이북: 당신의 대화를 디자인하라 (Design Your Talk)


가장 비싼 일을 하라

CEO의 시간은 회사의 가장 비싼 자원이다. 이 자원을 실무에 탕진하지 말고, 회사의 가치를 곱절로 만드는 곳에 투입하라.


#레버리지 (Leverage): "1시간으로 100시간의 효과를 내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파급력 있게" 일하는 것이다. 당신의 1시간이 코드 한 줄이나 이메일 답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속도를 10배 높이는 채용, 문화 설계, 또는 전략적 결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CEO의 시급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위임 (Delegation): "일을 넘기는 게 아니라, 권한을 선물하라"

단순히 귀찮은 업무를 넘기는 '토스'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여 팀원을 리더로 성장시키는 '투자'다. "내가 하는 게 빠르다"는 유혹을 버리고, 그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당신보다 더 잘 해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빈시간 (White Space): "생각할 시간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캘린더의 공백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회사의 5년 뒤 미래를 그리는 가장 치열한 '전략적 사고의 시간'이다. 빽빽한 미팅 사이에 숨 쉴 틈이 없다면, 당신은 운전대를 놓고 눈앞의 도로만 보며 엑셀을 밟고 있는 위험한 운전자와 같다.


핵심 질문 & 표현 가이드 (Talk Script & Tactics)


피해야 할 내면의 대화 (Maker's Guilt):

- "내가 직접 하면 1시간이면 끝날 텐데." (팀원의 학습 기회를 뺏는 말이다.)

- "회의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갔네. 젠장." (회의가 곧 당신의 일임을 부정하는 말이다.)

- "실무를 안 하니 내가 쓸모없는 것 같아." (정체성의 혼란이다.)


핵심 질문 스크립트 (Leader's Mindset):

+ (레버리지 점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내 자리(창업가의 가치)에 맞는 일인가?" -> 아니라면 과감히 위임하거나 아웃소싱해야 한다.

+ (위임의 언어): (팀원에게) "이 프로젝트의 전권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도록 돕겠습니다. 저를 활용하세요" -> 지시가 아닌 지원을 제안하라.

+ (빈 시간 확보): "다음 주 캘린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각의 시간(Think Time)'이 4시간 이상 확보되었는가?" -> 빈 시간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전략을 구상하는 가장 치열한 업무 시간이다.




5. 거인들의 대화: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Case Studies)


창업가가 '실무'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생산적'인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경영자들은 생산성의 정의를 '양(Quantity)'에서 '질(Quality)'과 '기준(Standard)'으로 완전히 바꿨다.


제프 베이조스: "나는 하루에 3번만 결정한다"

100개의 잔잔한 파도를 타는 것보다, 1개의 거대한 파도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면서도 "오전 10시 이전에 중요한 회의를 끝내고, 하루에 3개의 좋은 결정을 내리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 결정의 질(Quality)이 곧 속도다: 그는 피로에 찌든 상태에서 내린 100개의 섣부른 결정보다, 맑은 정신으로 내린 1개의 현명한 결정이 회사를 10년 앞서 가게 한다고 믿었다. CEO가 실무에 쫓겨 피곤한 상태라면, 그는 '나쁜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아지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조직 전체가 치르게 된다.


✓ 미래를 사는 사람: 실무자는 '오늘'을 살지만, CEO는 '3년 뒤'를 살아야 한다. 베이조스는 "이번 분기 실적은 이미 3년 전에 결정된 것이다. 나는 지금 3년 뒤의 분기를 위해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실무에서 손을 뗀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철저한 '시간 확보' 전략이었다.


브라이언 체스키: "나는 회사의 편집장이다"

직접 쓰지 않아도, 모든 글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라.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는 회사가 커지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직접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회사의 영혼인 '디테일'과 '경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실무자'에서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재정의했다.


✓ 기준(Standard)의 수호자: 편집장은 기사를 직접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기사가 1면에 실릴지(전략), 어떤 문체가 우리 매체의 색깔인지(문화), 어떤 기자가 우리와 맞는지(채용)를 결정한다. 체스키는 제품의 버튼 하나를 직접 디자인하는 대신, "이 버튼이 에어비앤비다운가?"를 묻고 판단하는 최종 검수자 역할을 맡았다.


✓ 위임과 통제의 균형: 그는 실무 권한을 위임했지만, 결과물의 '기준'에 대한 통제권은 놓지 않았다. 이를 통해 그는 수천 명의 직원이 마치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CEO의 진짜 일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6. 즉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와 다음 단계 소개 (Checklist & Next Steps)


이 챕터의 핵심 행동 강령

"지난주 캘린더를 열어라. 당신이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을 회의,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을 실무를 찾아 빨간 줄을 그어라."


놓아주어야 얻을 수 있다. 그 시간을 '생각의 시간'으로 대체하라.


CEO 역할 전환 체크리스트

[ ] (시간) 지난주 업무 중 '반복적이고 운영적인 일'이 50%를 넘었는가? (그렇다면 위임 신호다.)

[ ] (결정) 나는 오늘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가?

[ ] (사람) 나는 오늘 팀원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는가?

[ ] (학습) 나는 우리 회사의 다음 단계(Next Level)를 위해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가?


지식의 무기고 확장하기

✓ (해외 도서) 앤디 그로브,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 (High Output Management)』: 경영자의 생산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불멸의 고전. '타인의 성과가 곧 나의 성과'라는 원칙을 배운다.

✓ (해외 아티클) Paul Graham, "Maker's Schedule, Manager's Schedule": 창업가가 겪는 시간 관리의 충돌을 명쾌하게 설명한 에세이.

✓ (국내 도서) 김성준,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리더가 실무자가 아닌 '팀 설계자'로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다음 챕터로의 연결

내면의 비평가에서 내면의 관리자로... 창업가에서 CEO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했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관리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직원을 관리하듯 자신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다음 챕터(29장)에서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거나 혹은 너무 관대한 창업가를 위한 "좋은 상사의 독백: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법"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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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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