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의 정의: 통찰로 다시 쓴, 사전에 없는 일의 언어
우리는 흔히 권위(Authority)를 '직위나 계급을 통해 보장받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도상의 높은 위치, '임원'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인사권과 결재권이 곧 권위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많은 리더들이 발령을 받은 첫날부터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의 지시가 즉각적으로 이행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에게 권위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적인 명령권' 혹은 '영향력' 일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권위는 직책과 함께 주어지는 완장이 아니라, 신뢰와 역량으로 한 푼 두 푼 채워야 하는 '마이너스 통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30년 직장 생활 동안 수많은 임원을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권력(Power)'은 있으나 '권위(Authority)'는 없는 리더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방에 들어오면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지만, 그가 사라지는 순간 뒤에서 조소가 터져 나옵니다. 그들의 말은 법(法)이었으나, 그들의 존재는 짐(Burden)이었습니다. 직원들은 그의 '직급'에 복종했을 뿐, 그 '사람'을 따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진짜 권위를 가진 리더는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제가 모셨던 한 선배는 단 한 번도 후배에게 "내 말대로 해"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의 시간에 그가 입을 열면 좌중이 숨을 죽이고 경청했습니다. 그 침묵은 공포가 아니라, 그의 깊은 식견과 그동안 보여준 언행일치의 삶에 대한 '자발적인 경의'였습니다.
저는 조직에서 성장해 임원이 된 '집토끼'가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된 '산토끼'였습니다. 첫 출근 날, 제 손에는 화려한 명함과 막강한 전결 규정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에 흐르는 공기는 차가웠습니다. 저에게는 내부 승진자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즉 '관계의 역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자 체스터 바너드(Chester I. Barnard)는 "권위는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에게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수용영역(Zone of Acceptance)'이라 부릅니다. 부하직원이 상사의 명령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심리적 범위입니다. '집토끼' 임원들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며 쌓은 신뢰 덕분에 이 수용영역이 넓습니다. 그들이 다소 무리한 지시를 해도 직원들은 "저 선배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따릅니다.
반면, 낯선 '산토끼'인 저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수용영역은 바늘구멍처럼 좁았습니다. "외부에서 왔다는데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들은 저의 직책(Position)만 볼뿐, 저라는 사람(Person)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제가 명함만 믿고 "나는 임원이니 시키는 대로 해!"라고 호통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했겠지만, 그들의 마음속 수용영역은 굳게 닫혔을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권위는 고정된 값이 아니라 '계좌(Account)'와 같다는 것을. 내부 출신들은 두둑한 잔고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외부 출신인 저는 잔고가 '0원'이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령하기보다 저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실력을 증명하고(입금), 그들의 고충을 경청하며 인격을 보여주고(입금), 성과를 그들의 공으로 돌리며 신뢰를 쌓았습니다(입금).
그렇게 '권위 계좌'에 잔고가 쌓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늘구멍 같던 그들의 수용영역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저의 직급 때문이 아니라, 저의 정당성, 능력 그리고 관계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권위는 결코 인사팀이 발령장과 함께 선물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빚어내고, 스스로 증명하여 획득해야 하는 '후불제 승인'입니다.
오늘 당신의 명함과 직급을 모두 떼어내고, 오직 '인간 당신'만 남았다고 가정할 때를 가정해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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