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의 정의: 통찰로 다시 쓴, 사전에 없는 일의 언어
우리는 흔히 자책을 자기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깊이 꾸짖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장인들에게 자책은 주로 '일'과 연결됩니다. 맡은 프로젝트를 망쳤을 때, 상사에게 질책을 들었을 때, 혹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릅니다. "왜 이것밖에 못 했나"라는 날 선 물음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것이 더 나은 사회적 자아를 만드는 채찍질이라 믿곤 합니다.
그러나, 자책은 일의 실패를 반성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30년을 직원, 임원, 대표이사로 살며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마주해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궤적의 밑바닥에는 늘 '인정 욕구'라는 거대한 갈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당당한 임원이었고, 부모님께는 도리를 다하려 노력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리더'와 '가족'이라는 역할극에서 저는 단 한 번도 주연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기꺼이 나 자신의 욕구를 뒷전으로 밀어냈습니다. 타인의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내 안의 목소리는 작아져 갔고, 저는 그것을 '어른의 책임감'이라 포장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았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거운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세상 모든 곳에 당당했고 누구에게도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았는데, 오직 거울 속의 그 사람에게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했습니다. "이번 생, 회사에도 역할을 잘 감당했고 부모님께도 도리를 다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만은 미안하다." 이 고백은 결말이 아니라, 저를 자책의 늪에서 건져 올린 자책이고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자책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인정욕구의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과를 곧 자신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일의 성패는 시장의 변수, 운의 흐름, 타인의 변덕이 뒤섞인 불확실성의 영역입니다. 결과가 준 낮은 성과점수를 스스로의 존재 성적표로 치환하지 마십시오. 성공은 시장이 주는 배당금일 뿐 당신 존재의 증명서가 아니며, 실패는 시스템의 오류일 뿐 당신 존재의 파산이 아닙니다. 이 둘을 분리하는 ‘심리적 방벽’을 세울 때, 자책은 멈추고 개선을 위한 분석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당당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도리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나를 소외시킵니다. 타인에게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이제는 안을 향해 돌려야 합니다. 남을 실망하게 했을 때 쏟는 감정적 비용의 절반이라도, 정작 자신의 영혼을 방치한 죄에 대해 지불하십시오. 나를 뒷순위에 두었던 미안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건강한 책임감을 완성하는 첫 단추입니다. 나에 대한 도리가 바로 서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도리는 결국 ‘가면’에 불과합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비난은 답이 없는 소음이자 감정의 자학일 뿐입니다. 이제 그 날선 화살을 거두고 질문의 형식을 바꾸십시오. "나의 어떤 욕구가 무시당했기에 이토록 아픈가?", "타인의 박수를 얻기 위해 내가 외면한 내면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비난은 과거에 갇히게 하지만, 질문은 미래를 설계하게 합니다. 자책의 뜨거운 에너지를 나를 갉아먹는 데 쓰지 말고, 나를 보살피고 재건하는 고도의 '전략적 자원'으로 치환하십시오.
오늘 밤, 세상 모든 이들의 박수 소리를 뒤로하고 거울 앞에 선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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