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이 없는 세상_연작 단편소설 2
당신은 ‘한 줄의 문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나요?
루다는 한때, 시인이었다.
마지막으로 펜을 들었던 날, 법정은 그가 쓴 시 한 줄의 저작권을 말소 판결했다.
1996년 12월에 개최된 제네바 외교회의의 ‘WIPO 저작권 조약'에서 "창작은 모두의 것"이라는 선언 아래, 세계는 모든 작가에게 저작권을 빼앗았다.
모든 문장은 공공 자산이 되었고, 저작자는 ‘존재하되, 증명할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이 세계에서 작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고, 동시에 누구의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패소했고, 자신의 문장이 법적으로 부정되자 시를 버렸다.
지금은 ‘기억 복원부’의 청소부다.
문장을 만들어 내던 손으로 과거의 흔적을 닦아내는 사람.
카이는 오블리비온에서 일하고 있다.
전 지구적 창작물의 흐름을 감시하는 데이터 센터.
그는 문장 패턴을 감지하고, "누구의 것도 아닌 문장"으로 만드는 분해 알고리즘 기술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해체되지 않고 반복되는 문장 하나를 발견한다.
“그녀의 침묵은 밤의 울음보다 더 시끄러웠다.”
이 문장은 기이했다.
알고리즘은 모든 문장을 분해하고 재구성하지만, 이 문장은 시스템 안에서 단단한 바위처럼 남아 있었다.
은유적 구조, 리듬, 응축된 의미. 기계는 이를 "이상 징후"로 분류했고, 시스템은 잠시 침묵했다.
카이는 이 한 문장이 500개가 넘는 콘텐츠 속에 원형 그대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조사 끝에, 이 문장이 오래전 폐기된 시집의 서문과 일치함을 알아냈다.
“작가 이름이… 루다? 그런데 이미 저작권 말소 판결을 받은 작품이라고?”
이 문장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스템 모니터 안에서 반복되며 깜빡이고 있었다.
카이는 그 문장을 '재심 위원회'에 제출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저작권을 다루는 폐쇄형 법정.
이곳은 '기계적으로 분석 가능한 구조'만을 인정한다.
문장은 수학적 함수로 환산되어야 하며, 비유와 감정은 분해되어야만 했다.
이 법정 안에서 수많은 문장들이 코드로 변환되고, 함수로 강제되었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 문득 ‘루다’라는 이름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는 자료를 들고 루다를 찾아갔다.
청소 중이던 루다는 무표정하게 그가 내민 탭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왜 이제 와서 그 문장을?”
카이는 대답했다.
“시스템이 이 문장을 분해하지 못했어요. 반복이 계속되어, 결국 과부하로 멈췄어요.”
루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의 손은 가끔 허공을 더듬었다.
닿지 않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장은 말했다.
“감정적 해석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문장은 인과관계의 논증에 의해 분해 가능해야 합니다.”
카이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분해 불가능한 문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미는 코드로 환산됐고, 언어는 함수로 분해되었다.
그러나 그 문장은 끝내 환원되지 않았다.
알고리즘은 판정을 내렸다. "논리적 분해 불가능. 기계적 복제 불가능."
재판장은 말없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시스템은 경고음을 내며 되물었다.
“이 문장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법정을 감싼 침묵은, 밤의 울음보다 더 시끄러웠다.
재판장은 마침내 선언했다.
“해당 문장은 은유의 구조를 가지며, 논리적 검증이 불가능하여 기계적 재창조가 불가능하다. 고로 작가를 저장용 데이터베이스에 표기하되, 작가명의 외부 노출은 차단한다.”
전광판에 문장이 떴다.
“그녀의 침묵은 밤의 울음보다 더 시끄러웠다.” 작가: 루다
그 순간, 오블리비온 시스템 전역에 충돌이 발생했다.
복제 필터는 이 문장을 '은유'로 판단해 배포를 정지했다.
전 세계 콘텐츠 생산 시스템이 해당 문장에서 일시 정지되었다.
단 하나의 문장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저작자를 회복한 것이다.
기자들은 루다를 찾았다.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지만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오블리비온 건물 외벽에 조용히 시 한 줄을 남겼다.
“세상은 내 말을 잊었지만, 나의 침묵은 밤의 울음보다 더 시끄러웠다.”
그는 그 문장을 벽에 적은 뒤 손바닥을 얹었다.
그의 시가 이 벽에 남겨진 것을 확인하려는 듯이.
긴 세월 묵혀온 말이 손끝에서 흘러나올 때, 그는 마치 다시 시인이 된 듯했다.
그의 침묵은, 어떤 인터뷰보다 선명했다.
그는 저작권을 잃고 침묵했지만, 문장은 은유로 살아남아 세상에 크게 울리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카이는 그 문장을 조용히 외부화면용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했다.
“그녀의 침묵은 밤보다 더 시끄러웠다.” 작자: 미상, '루다'로 추정
이 세계는 저작권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어떤 문장은, 은유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논리로 완전히 분해할 수 없다.
시스템은 문장을 분석했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석이 아닌 분해만을 아는 존재는 결국, 창작자의 흔적 앞에서 멈춰 섰다.
시스템은 다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작권은 사라졌지만, 저자는 아직 살아 있다.
[작가의 말]
이야기의 시작은 단순한 질문이었습니다. “저작권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문장을 누군가의 것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은유적 서사가 논리적 서사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시스템은 문장을 분해, 복제할 수 있어도, 그 문장의 '이유'까지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은유는 기억이 머무는 그릇이며, 그 기억은 우리가 존재했다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이 작품은 저작권 제도 자체만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넘어, ‘창작이 인간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서사입니다.
이 글은 창작자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P.S. 제목인 “그녀의 침묵은 밤보다 더 시끄러웠다”는 익명의 인용구로 온라인에 퍼진 “Silence is sometimes the loudest cry.”에서 따왔습니다. 마치 이 글의 내용처럼 원저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아 보입니다.
1996년 12월에 개최된 제네바 외교회의의 ‘WIPO 저작권 조약'은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디지털 환경 하의 저작권 문제를 보완한 조약입니다. 소설에서는 "이 협약에서 저작권을 무효했다는 허구의 사실"을 가정하여 글을 전개했습니다.
* 영문판: https://brunch.co.kr/@jahakimeash/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