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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Aug 22. 2023

여름날의 투투

투투 이야기


웬만하면 안 일어난다. 눈만 굴린다.


여름날의 투투는 힘들다. 살아있음이 힘들다. 34, 5도를 넘나드는 기온과 끈적한 습도로 체감온도는 더 무더운데 투투는 털옷을 입고 산다. 엄마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흘리고 투투는 조금만 움직여도 혀를 빼물고 헥헥거린다.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며 눈만 굴리는 투투.



거실의 에어컨이 돌아가면 그 앞에 누워있다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제 잠자리에 바싹 엎드려 있는다. 처음엔 시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너~무 시원해진 거다. 엄마 아빠의 움직임을 쫓으며 눈만 굴린다.


아빠와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온 날, 투투의 몸이 이상했다. 처음엔 몹시 뜨겁고 심하게 헥헥거렸다. 물을 마시고 시원하게 해 주었는데도 계속 헥헥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투투가 덜덜 떨고 있었다. 몸을 떠는 투투를 만져보니 몹시 차가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투투의 발바닥과 배를 검사하니 온기가 없었다. 시간을 보니 10시.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을 검색하니 30분 거리다. 여차하면 가야겠다. 주소를 캡처해 두었다.


투투, 왜 그러니? 산책이 힘들었니? 그랬구나. 너무 더웠던 거다. 체온 조절이 안되고 있어서 뜨거웠다가 차가워졌다가 하는 거였다. 병원을 갈 때 가더라도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먼저였다. 담요를 덮어주고 안아주었다. 덜덜 떠는 투투 몸의 차가운 기운이 담요를 덮었는데도 전해졌다. 엄마 무서워.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담요를 덮은 채 덜덜 떨고있는 투투. 혀가 조금 나와있다


20분쯤 지나니 투투가 떨지 않는다. 내려놓으니 녀석 헤헤 거린다. 계속 쳐다보는 엄마가 이상한지 눈길을 떨구다가 혀로 엄마 얼굴을 쓱 핥아주었다. 핥아주는 투투의 혀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발바닥과 배를 만져보니 정상적인 온기가 느껴졌다. 괜찮니? 물으니 꼬리를 흔들며 일어나 몸을 부르르 털며 내 앞에 앉아 귀를 눕힌다. 뭐야, 이 녀석. 엄마 놀랐잖아. 산책이 힘들었구나. 아이고, 무자식이 상팔자. 아니 무견이 상팔자로다.


볼일보고 들어와 또 누웠다. 공을 던져줘도 관심 없는투투.


격하게 아무 일도 안 하고 싶다


여름의 무더위는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니다. 동물들은 물론이고 식물도 축 쳐진 채 뜨거운 태양빛을 견디고 있다. 작년 여름엔 이 정도로 덥진 않았던 것 같은데 1년 사이 이렇게 변한 것일까. 폭염이 장기화되어 간다는 뉴스의 한 줄이 새삼 두렵게 다가왔다. 인간은 또 무슨 수를 내서라도 시원하게 지내는 방법을 찾겠지만 동, 식물은 이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참아 견뎌야 한다.


투투는 이제 아침과 저녁에만 잠시 집밖으로 나가 배변을 위한 산책을 한다. 뜨거운 한낮에는 잠깐씩 마당에 나가서 소변만 보고 얼른 들어온다. 하늘을 쳐다보다가 눈이 부신지 찡그리더니 냉큼 현관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곤 졸다가 자다가 하루를 보낸다. 여름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처서라는데 비가 또 내린단다.


그런데 투투야, 오늘 앞산을 보았니? 산의 색깔이 달라졌어. 짙푸른 녹음이 없어지고 어느 사이에 변한 것일까, 산 위가 노랗게 변해가고 있어. 숲에는 가을 소식이 이미 당도했나 봐. 한 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여름 동안 우리 잘 지냈지? 다가 올 가을도 겨울도 또 계속될 다음 계절에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자. 투투야, 엄마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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