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려는 지 바람이 이리저리 붑니다. 사람 사는 동네는 문득 적막해지는데 숲은 바쁜 모양입니다. 나무들이 제 생긴 모습대로 흔들립니다. 흔들리는나무는먼저 저를 흔들고숲을 흔들고산을 흔들며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됩니다. 덩어리를 이룬 숲과 산은 거대한 동물이 되어 꿈틀댑니다.
바람이 숲과 산을 지나 도로를 스치고 창 안으로 들어오더니감각을 깨웁니다.바람이 몰고 온 냄새엔 칡덩굴과 벚나무, 전나무, 산목련나무, 참나무와 상수리나무, 물병나무가 있습니다. 그들의 나뭇잎과 가지에 달린 열매들, 그 가지에 깃들어 사는 산새들과 딱따구리, 멧비둘기, 다람쥐와 말똥구리와 애벌레들과 개미와벌들이있습니다.
햇살이 사라지더니사방이 회색빛이 됩니다. 산 위쪽에서부터 솨~아 하는 소리가 용암의 그것처럼 밀려 내려옵니다. 숲 전체로 솨~솨~ 소리가 번집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 비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비는 소리로 먼저 내립니다.
투다다다다 팅팅, 띵띵, 지붕에 부딪쳐 튕겨 나간 소리가 빗방울에 다시 부딪칩니다.키 작은 잡목에 내리는 비는 후드득후드득 짧고 넓게 퍼지며지상을 적십니다.잠시 후구수하고 텁텁한 흙냄새가 밀려들고 풀냄새와 물 냄새가 뒤따라 들어옵니다. 날 것의 비린 풀내가 물에 젖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 흘러나온 고기 굽는 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도 섞여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다시어두워지더니 세찬 비가 내립니다. 그렇군요. 세찬 비는 천천히 오지 않습니다. 세찬 비는 빗방울이 소리보다 먼저 지상에 도착합니다. 숲과 산에, 동네 지붕 위에 도로에,자동차 본네트에 한꺼번에 거침없이 와라락 요란하게 내립니다. 수평의 공간뿐 아니라 수직의 공간에도 내립니다. 마구 할퀴듯 비를 뿌립니다. 빗방울이 지나간 자리엔 죽죽 그은 듯한 선이 남습니다. 조용조용한 말소리가 묻혀버릴 정도로 요란합니다.소리와 빗물이 동시에 밀어닥칩니다.빈 공터의 풀들이 깔려 쓰러집니다. 쓰러진 풀들 위로 비는 더 내리고 붉은 빗물이 사정없이 흐릅니다. 돌과꺾인 가지들과 흩어진 잎들과검정 비닐봉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끌고 갑니다.온 사방으로 거침없이 마구 흐릅니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그 기세가 자못 사납습니다. 무례한 폭도처럼 거스를 수 없는혁명처럼 앞을 막는 것은 다 쓸어버리겠다는 기세입니다.
한순간 빗줄기가 뚝 끊기더니 사위가 조용조용합니다. 개울물 소리가 요란합니다. 여러 장의 조각 헝겊 속에서 제 색을 슬쩍 드러낸 것처럼 먼 데 하늘 한 귀퉁이가 파랗습니다. 처마 끝엔 물방울이 조로롱 달려있고 비를 피하던 개가 지붕밖으로 나가 어슬렁거립니다. 산속이 한꺼번에 불을 밝힌 것처럼 환해졌는가 싶더니거짓말처럼어두워져선 스스로 깊은 어둠이 됩니다. 산 위엔 분홍빛 옅은 노을이 빛을 끌고 넘어가면비는 소리 없이조용조용내리고사람 사는 동네엔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 개들이 저녁밥을 먹는 소리,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들이들립니다. 풍경 밖에 있던 사람이 어둠과 함께 풍경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