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전거에 올라탄 날, 나는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찾았다. 웃음이 나왔다. 자동차로 인해 몸에 밴 습관은 이것만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려 할 때 나도 모르게 핸들을 더듬어 깜빡이를 찾았다.
자동차가 깜빡이로신호를 주고받는다면 자전거의 신호는 말이다. "먼저 지나갈게요.", " 왼쪽으로 지나가겠습니다.", "지나갑니다" "조심하세요" 등이다. 자전거에 숙달된 사람들이야 두 손을 놓고도 탄다지만 앞을 향해 가야 하는 자전거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쉽지 않다. 뒤를 돌아본다 해도 짧은 순간 보아야 하므로 뒤의 사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뒤따르는 자전거가 앞서 가는 자전거에게 말로 신호를 대신하는 것이다. 로드 자전거나 싸이클 같은 경우는 속도가 있어서 멈추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 속도를 유지하며 지나가야 한다. 그들은 내 속도보다 빠르므로 지나가겠다고 할 때 기꺼이 비켜주어야 한다.
물론 이 신호에 인색하거나 무시하고 지나쳐 가는 경우도 많고 큰 소리로 "비켜!" 하는 경우도 있다. 2 ×9의 비속어를 날리는 자전거도 있다. 아니, 언제 봤다고 반말이니? 저런 ~%@#&... 하면서 아직도 버리지 못한 성질이 욱, 하고 올라오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쌩 하고 가버리는 걸. 그럴 때마다 초보 자전거는 식은땀을 흘린다. 뒤를 잠깐 돌아보는 것도 어려운데 뒷사정이 어떤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가는 초보 자전거에게 신호를 보내주는 것은 고맙고 당연한 일이다.
기억에 남는 신호가 있다. 뒤에서 "지나갈게요"라는 말이 들려 오른쪽으로 비키려 했다. 그러자 뒤따르던 자전거는 이렇게 말했다. "가시던 방향 그대로 가세요. 저희가 오른쪽으로 지나가겠습니다." '저희? 여럿인가?'생각하는 순간, "7명이 지나갑니다. 안전한 라이딩되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우왕좌왕하던 내게 친절하게도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고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준 것이었다. 자전거 신호가 어때야 하는지 가르쳐 준 신호이기도 했다.
남양주 자전거 길
초보 운전자에게 집에서 애나 보라며 비상등을 켜대고 클락션을 울리며 상스럽게 위협하는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천천히 뒤따르다 신호를 보내며 안전거리를 충분히 두고 앞질러 가는 운전자가 있듯이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운전을 오래 해 보니 자동차의 뒷모습만 봐도 그 운전자의 인성과 운전 습관, 운전자의 심리까지 보인다. 저 사람 참 젠틀하군. 저 사람 성격이 급하군. 저 사람 지금 아주 급한 일이 있나 봐, 하는 것처럼 자전거도 비슷하다. 깜박이나 비상등을 켤 수 없는 자전거는 말로 전달하는 신호에 그 사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품위와 친절을 담아 정확한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또 새롭게 배운다. 그것은 무엇보다 서로의 안전을 위한 일이다.
정차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처럼 코너에 세워두거나 도로 중간에 세워두는 자전거들은 배려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대부분의 자전거 도로는 넓지 않다. 양방향 자전거의 통행을 고려해 길 가장자리로 비켜나 정차해야 하며 자전거나 사람이 길의 장애물이 되어선 안 된다. 이것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파가 몰리는 휴일의 어떤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뒤섞일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자전거 도로라고 자전거만 우선시할 수 없다. "지나갈게요"라든가 " 한쪽으로 가 주세요" 라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신호가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면 서로의 안전을 위해 자전거에서 내려걸어야 한다. 5명 이상의 자전거 그룹이 지나갈 때는 더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걷는 사람들은 서너 대의 자전거가 지나가면 더는 오지 않는다고 여겨 자전거 도로를 다시 점령해 버리기 때문이다. 자동차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자전거도 20km 이상 속도가 나는 차이기 때문에 차를 탄 사람이 먼저 조심해야 한다.
북한강
길 위에서의 배려와 신호 전달은 안전하고 기분 좋은 라이딩의 기본이다. 사는 일도 라이딩과 다르지 않다. 신호와 배려가 부족하거나 감정과 의견을 전달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관계를 망치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한다. 내가 지나가야 하니까 네가 비켜, 하는 마음은 사고를 부른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미안해", "괜찮니?", "네 생각은 어때?", "양보를 부탁해도 될까?", "당신이 먼저야", "고마워" 하는 신호들을 적절히 주고 받아야 한다. 내가 다치면 다른 사람도 다친다. 상처가 나는 건 순간이지만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 마음의 상처는 더 그렇지 않은가.
만추로 가득한 시절을 즐기는 건 자전거뿐이 아니다. 서로를 위한 신호와 함께 미소로 배려하는 길은 더 즐겁다. 오늘도 즐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