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커튼을 뚫고 들어온다. 얼마나 바라던 날씨인가. 햇살아래서 뽀송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요즘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다.그 감정이 타이어에 바람을 넣게 하고 커피를 내린다.간밤에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낙엽이 어지럽다.햇빛이 맑아 작은 낙엽 하나에도그림자가 선명하다.무릎이 아파서 뒤척인 지난밤,늙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에 나서는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젊다.
햇살은 허공을 뚫고 나뭇잎과 선글라스의 검정 유리를 지나 두 눈으로 쏟아진다. 햇살이 지나는 길마다 투명해지는 공기와 잎들.... 쏟아지는 햇살에간밤의 어지러운 꿈이 녹아사라진다.
예전 기차가 지나던 길에 자전거가 달린다. 길은 7개의터널을 품고 있다.저 앞에보이는 터널 안이 컴컴하다. 평지 같은데오르막인가.... 터널에 다가갈수록 자전거가 느려진다.페달을 깊게 밟고 안으로들어간다.
와~~ 시원하다.아니오싹할 정도의 냉기다.후텁지근했던 여름엔 시원한곳이었는데 이젠 춥다.어두운 터널은휘어져 끝이 보이지 않더니멀리동전만 한 빛이 보이고 어느새 환한 아치를 통과하며 햇빛 속으로 다시 나왔다. 터널은 입구가 출구이고 출구가 입구다. 컴컴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가는 곳이다.
바람이 불어 사사삭 소리가 나며 나뭇잎들이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형광물질을 허공에 뿌린 것 같다. 나뭇잎뿐 아니라 아스팔트 길과 검은 철제 펜스, 흰 돌멩이, 줄지어 선 가로등, 달려오는 자전거의 헬멧 등에서 빛이 반짝인다. 햇살이 닿는 모든 것에빛이 닿아 튕겨지며 반짝거린다. 자전거가 달리는 페달 아래로 짙은그림자가 함께따른다.
자전거는햇빛과 그림자와 길을 생각한다.그림자는 밝음의 상대적 의미가 아니다. 그림자는 대상의 뒷면이지 어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장을 지닌 빛은 물체에 부딪치며 반짝이고 그 빛이 강하고 밝을수록 대상의 그림자는 선명해진다.자전거가 길과 함께 반짝이며 짙은 그림자를 갖는 이유다. 길은 곧게 뻗어있거나 구부러지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눈에 익어 익숙하지만 매일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 길이기에 똑같은 길은 없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듯....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반짝거린다
입안이 뻑뻑하다. 쉼터가 보여 자전거를 세운다. 물을 마시고 나무 의자에 앉으니 엉덩이가 기분 좋게 따뜻하다. 허리 스트레칭을 하라는 것인가 보다. 거꾸로 매달리듯 의자에 누우니 아, 허리가 시원한 것이 키가 커지는 것 같다.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길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길은 가을이다
자전거 길 옆으로 좁은 숲길이 나 있었다. 길에 꽂아놓은 리본을 보니 옛 산길의 일부다. 자전거로 지나치면서 '다음에 가 봐야지' 했던 길. 혼자만의 라이딩이 좋은 점이다. 언제든 길을 바꿀 수 있다.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그늘지고 좁은 길에 낙엽이 가득하다. 아, 이 적막함..... 이런 길을 나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벤치도 있구나! 호젓한 산길을 걸으니 누군가를 끌어안으며 그의등을 감싼 손가락 끝까지 힘을 주어 마음이터지도록 애정을 나누는 그런 기분이다. 산길의 풍경과 냄새와 바람, 소리들이 온몸의감각을벅차게 끌어올린다.
반그늘진 산길이라 어느새 땀이 식는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져온 커피를 마신다. 커피와 숲의 향이 한꺼번에 입안에 고인다. 숲길은 어디론가 이어져있고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혼자인 시공간.... 더 머무르고 싶다. 그러나 길에 나선 이상 계속 가야 한다. 숨을 들이쉬고 길게 산길을 돌아보곤 일어선다.
고즈넉한 숲길. 마을로 이어진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길 옆으로 나란한 길이 또 있고
누군가는 두 다리로
누군가는 자전거로
누군가는 자동차로
길을 간다.
천천히
조금 빠르게
빠르게
제각각 다른 수단으로 자신의 길을 간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다. 길은 순환이고 양방향성이라 출발지가 도착점이고 도착한 곳에서 다시 출발이 시작된다. 누구는 도착하고 누구는 길을 떠난다. 그 길엔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오고 춥고 안개가 끼다가 맑은 바람이 분다. 길이 찬란한 날, 더불어 자전거도 찬란하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