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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이가 기댈 만한 곳인가요?

필사하며 나누며

by Eli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오이는 수직으로 자라다가 일정 높이가 되면 기댈 곳을 스스로 찾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쓰러지지 않고 태양빛을 받기 위해 기댈 수 있는 작은 틈이라도 있다면 돌돌 말아 잡는다.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자꾸 생겨도 오이처럼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잡고 버틸 강인함이 필요하다. 앞을 살피면 뒤에서 문제가 생기고 오른쪽을 주의하면 왼쪽에서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이 삶이니 사방팔방 어디에서 뭔가 튀어올라도 놀라 자빠지지는 않아야 한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댈 곳을 찾는 오이처럼 우리도 스스로 기댈 곳을 악착같이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당당히.

-채록 : 채소를 기록하다, 김수연



* 질문 : 일상에서 '기댈 곳' 한 가지 이상 찾아보기.

* 나는 누군가의 기댈 곳인가.




집을 지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날마다 돈이 들어간다. 나는 남의 돈으로 집을 지었다. 지인의 남편은 자기가 살 것처럼 최선을 다 해 자신의 돈으로 집을 지어주었다. 준공 검사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손을 썼고 그 덕에 대출을 받아 일부를 갚았다. 그 사장님께 빚진 것을 갚는데 3년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 지인과는 소원해졌다. 나는 새 집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지인과 그 남편을 초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저녁을 대접했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댈 곳을 찾는 오이처럼"


그랬다. 10년 전 나는 오이였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댈 곳을 찾아 덩굴을 돌돌 말아 움켜잡는 오이였다.


집을 짓기 전 우리는 보증금 5천만 원에 월 45만 원 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운 좋게 넓은 집을 싸게 얻어 살았다. 나는 그 집이 좋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주인은 사정이 생겼다며 계약 만료 전에 갑자기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집을 보러 다녔지만 우리가 가진 5000만 원으로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근처의 아파트는 전세가 보통 1억이 넘었고 소위 전원주택도 마찬가지였다. 월세는 보증금이 낮았지만 일해서 번 돈 대부분을 매 달 주어야 할 정도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화가 나면서 살기가 싫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없나, 하늘을 보며 징징거렸고 성당 미사에 가서는 십자가를 노려봤다. 전화기의 연락처를 매일 들여다보았다. 부모, 형제, 친구들, 아는 사람들, 그저 연락처인 사람들. 나는 기댈 곳이 없었다. 돈이 생길 방법은 없고 이사는 가야 하고, 언감생심인 집만 보러 다니던 중 부동산 사장님의 꼬드김으로 땅을 보러 갔다.


땅을 보는 순간 나는 그곳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땅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20평 땅 값은 평당 100만 원으로 1억 2천. 그 돈이 어디 있나, 하면서도 남편을 데리고 가서 땅을 보여주었다. 내가 돈이 없는데 남편은 있을까. 땅을 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자고도 못 산다고도 하지 않았다.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하고 전세도 월세도 너무 비싸잖아. 나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남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월세와 대출 이자는 비슷했다. 월세 낸다 생각하자. 덜컥 땅을 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잠을 자지 못했다. 잔금은 어떻게 치르지? 땅만 사면 뭐 하냐. 거기다 텐트 치고 살 거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집을 비워줘야 할 날은 3개월이 남아 있는 상황.


어느 날 퇴근하는 길에 지인의 집에 불쑥 찾아갔다. 지인의 남편은 건설을 하는 분이었고 나는 그 집 딸내미를 원하는 간호대학에 보내 주었다. 다짜고짜 외상으로 집을 좀 지어달라고 했다. 선선히 그러겠다고 했다. 진짜요? 저 돈 없는데 괜찮아요? 네, 지어드릴게요. 선생님 덕분에 제 딸이 간호대학교에 갔어요. 은혜를 갚아야죠. 짓고 나서 준공 검사 떨어지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그때 갚으세요, 했다. 저 땅값도 없어요. 지인의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제가 빌려드릴게요.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지인은 그렇게 말하는 남편을 못 마땅한 듯 쳐다보았지만 나는 못 본 척했다. 계약을 하러 갔는데 알고 보니 땅 주인 역시 아는 분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다는 걸 안 땅주인은 땅값을 10%나 깎아주었고 서울에 있는 18평 빌라의 세를 올리고 남편의 퇴직금을 미리 당겨 땅을 샀다.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집을 지으며 돈 때문에 화가 나고 힘들었지만 그보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외로웠다. 내가 너무 하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자 가르치는 애들도 소중한 일터도 다 귀찮았다. 어느 날 학원의 원장이 그런 나를 부르더니 당연히 해야 할 잔소리를 했다. 스스로 무너지고 있던 나는 단 한 푼이라도 아쉬웠던 현실을 개무시하고 사표를 집어던졌다. 주변을 향해 분풀이를 해댄 것이었다. 그 분풀이의 최종 목표는 돈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비난이었다.(한 달 후 원장님의 전화를 받은 나는 얌전히 다시 출근했다.)


어찌어찌하여 아주 간소한 집이 지어졌지만 주변 조경은 엉망이었다. 마당에 잔디를 심거나 나무를 심는 건 고사하고 현관문도 달지 못했다. 우리 대신 건축비를 담당하던 사장님(지인의 남편)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인의 문자가 날아왔다. 당장 돈을 갚으라며 양심이 있냐, 없냐 했다. 평소 허리를 굽혀 늘 감사하다고 말하던 것과 180도 다른 태도였다. 나는 그날 얼이 빠져버렸다. 몇 날 며칠까지 최소 3천만 원이 필요하니 무조건 보내라고 했다. 있는 돈을 박박 긁어모으니 500만 원이었다. 그 돈을 보낼 수는 없었다. 3천만 원은 고사하고 천만 원이라도 보내고 싶었다. 오빠에게 전화하니 그런 돈은 없다고 했다. 아무리 전화 번호부를 뒤져도 5백만 원 빌려달라고 전화할 곳이 없었다. 설사 누군가 빌려준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우리 아버지는 뭐 부자냐. 남편이 무슨 수를 냈는지 500만 원을 채워서 천만 원을 보낸지인이 보낸 문자를 삭제했지만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지인과 멀어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인이 보낸 문자로 인해 내가 상처를 받은 사실을 그 남편인 사장님은 모르고 있었다. 현관문을 달아주며 자신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주변 조경은 해 줄 수 없다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집은 튼튼히 지었으니 비, 바람,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 진정한 말을 들으며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기저기 성질을 부리고 있던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돈 없이 집을 지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건설 사장님이 바로 내겐 기댈 언덕이었다는 사실을. 그분이 내겐 "물과 햇빛"이었다는 것을. 나는 덩굴을 뻗어 돌돌 말아 그 사장님의 친절과 호의를 부여잡고 '돼지 삼 형제'의 튼튼한 벽돌집을 지은 것이었다. 준공 검사가 떨어지고 은행에서 1억을 대출받아 일부를 갚으며 지인과 그 남편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가장 먼저 그 두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밥을 차려주고 싶었다. 먹고 있는데도 자꾸 권하는 내게 그분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공사를 하기로 한 건 국어 선생님이 제 아이들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에요. 긴 시간 제 아이들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 덕에 제 아이들이 그나마 제대로 컸습니다. 그 은혜를 갚은 겁니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어머니께서/한 소식 던지신다/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그래도 큰 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싸우지 말고 살아라/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의자, 이정록)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다가 나는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그저 눈물이 핑 돌았지만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눈물은 줄줄 흘러내리며 멈추지 않았다.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것.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엄청 큰 언덕인 의자는 늘 내게 있었다는 것. 그 덕분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에 집을 앉히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오빠가 전화를 했다.


"그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안해. 내 동생."

돈이 없으면 착하지나 말지. 우리 오빠는 왜 착해 빠진 거야? 이놈의 세상은 왜 착한 사람은 모두 돈이 없는 거야. 내 전화번호부의 사람들은 모두 착해서 돈이 없었다. 그걸 아는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못한다.

"괜찮아, 오빠. 내가 누구야. 걱정하지 마. 놀러 와. 삼겹살 구워 줄게. 내가 오빠의 비빌언덕은 못 돼도 삼겹살은 구워줄 수 있어. "


오빠 전화를 받고 연락이 뜸해진 지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ㅇㅇ엄마, 잘 지내지? 날이 너무 좋아서 문자 하는 거야. ㅇㅇ엄마 덕분에 집을 지어서 더 이상 집 걱정 없이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 그 은혜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건축비를 충당할 요량으로 짓는 김에 짓자며 건설 사장님이 별채를 제안했다. 세를 주자는 것이었다. 26평을 지으나 50평을 지으나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직영 공사와 마찬가지였고 어차피 우리는 돈이 없었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 대신 마당을 포기해야 했다. 마당이 무슨 한가한 소리더냐. 마당이 있어야 할 곳에 들인 방 두 칸 별채엔 예전의 나처럼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그런데 하나같이 돈이 없었다. 9천만 원 전세로 내놓으면 4000의 월세로 하자고 했고 5000의 싼 월세를 내놓으면 보증금이 없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그럴 때마다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뒤돌아 우리끼리 한숨을 쉬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댈 언덕, 물과 햇빛이 되어 주어야 했다. 마치 이젠 니네 차례야, 하는 듯싶었다. 그래야 그 어떤 '오이'가 무엇이라도 움켜잡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밖은 무척 덥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내 집에서 나는 이제 발 뻗고 잔다. 집을 짓고 나서 매 해 명절 때마다 건설 사장님께 감사하다며 선물을 보냈다. 9년째가 되던 작년 명절에 연락이 왔다. 제발 이제 그만 보내라고. 선물을 받을 때마다 미안하다며 자신을 그만 미안하게 하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하고 이젠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 그 대신 아이들에게 그분을 잊지 말라고 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너희들도 누군가에게 오이가 움켜 잡을 수 있는 '물과 햇빛'이 되어 주라고.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이것이 너희들에게 물려주는 재산이라고.


"싸우지 말고 살아라

....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물과 햇빛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댈 곳을 찾는 오이처럼"





* 커버 그림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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