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나누며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참 무섭다고, 무엇보다 이 감정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한순간이면 충족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슬픔이나 우울한 감정 같은 경우는 일시적으로 몰려왔다가 사라지는 외로움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반면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그 순간 충족되면 바로 해소되지만 일순간 몰려올 때 몹시 충동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에 외로움에 휩싸이면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만나선 안 될 사람, 나를 아프게 할 사람을 판별해 낼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헤맨다고 모두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김달) -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참 무섭다고"
외로움은 무섭다. 무섭다는 것은 충동과 분노, 좌절 등이 외로움과 동반되어 나 자신을 너무도 쉽사리 포기하게 하며 부정적인 감정들에게 나를 먹이로 던져주기 때문이다.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은 몇 억 광년 떨어진 황폐한 별에 혼자 있는 것만 같다. 내 앞에서 웃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거나 등을 돌린 것만 같다. 무엇보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외롭다"라고 말하는 순간은 치명적이다. 이때가 가장 외롭다. 모른 척, 못 본 척하며 지나가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을 웬일인지 입 밖으로 "외로워"라고 말하는 순간 외로운 감정은 증폭된다. 만일 그렇게 말한 후 눈물이라도 펑펑 흘린다면 그 자체로 외로움은 휘발되어 버리기도 하지만 매 번 눈물을 흘리진 않기에 스스로를 집어삼키기는 괴물로 변할 때가 더 많다.
외로울 땐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는 초반의 호흡은 매우 거칠다. 주절주절, 네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하며 뜨겁고 거친 어조로 일기를 쓰다 보면 호흡은 가라앉고 어떤 분별이 생긴다. 외로움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물과 기름이 한데 섞여있던 것이 분리가 되면 층위가 생기듯 일기 안에서 외로움의 층위가 나타난다. 그것이 관계에서 오는지, 일에서 오는 건지, 단순한 피로 때문인지 혹은 제 실존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보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감정이 걸러지면서 외로움 뒤에 있는 사건과 정황의 실체, 본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가짜와 진짜가 구별된다
심한 자괴감이 나를 짓누르던 날, 몸살이 났었다. 하필 그날은 나도 기억하지 못한 내 생일이었는데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에게서도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 하나 없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생일이 뭐 대수인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유혹자처럼 외로움이 엄습했다. 외로움과 밴댕이 속알머리는 비례한다.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좁쌀만 해진다. 그리고 놀라운 에너지가 발휘되는데 그건 바로 원래의 감정보다 거짓되게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것이다. 거의 대하소설급으로 나아가기도 하는데, 감정이 과대포장되는 건 순식간이다.
휘갈겨 쓴 일기에서 그런 나를 정면으로 만나면 어이가 없다. 자괴감이 든 날 하필 몸이 아팠고 하필 내 생일이었고 하필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는 서운함이 외로움으로 둔갑했는데 그것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서러움을 토로하던 일기를 쓰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운함과 외로움은 다르다"라고 쓴 후 나는 일기를 덮고 가족단톡방에 문자를 날렸다. 오늘 내 생일이었다고. 늦었지만 선물은 사양하지 않겠다고. 물질이 아닌 말로 때우는 건 노 땡큐라고. 그날, 서운함을 핑계 삼아 세력을 키워보려던 외로움은 정체를 들킨 도둑처럼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에겐 두 종류의 일기가 있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기와 일상의 기록을 그림으로 남기는 그림일기 두 가지다. 일기를 쓴 것은 꽤 오래되었고 가끔 지난 일기를 읽어보는데 어떤 일기는 낯 뜨거워 읽을 수가 없다. 요즘은 일 년에 서너 번 쓰는 것 같다. 대신 그림일기를 많이 그리고 쓴다. 그림일기는 소소한 것들을 그리고 글을 적어나가는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감정이 가라앉기라도 하는지 글로만 적던 일기보다 객관적이다. 감정의 토로가 적다는 얘기다. 원했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그림일기는 아주 특별한 기쁨이다.
그림이 들어가기 시작한 일기로 변화되면서 슬픔은 안개처럼 희미해졌고 관계는 편해지고 더러 무심해졌다. 관심이 줄어든 탓이다. 어느 날 쓴 문장처럼 "각자 알아서 사는 거지."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과 다르게 외로움이 가끔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누구도 나처럼 외로울 테지, 하는 측은지심이 주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인간이어서 외롭고 그런 감정을 속으로 삼키며 아무도 몰라준다는 외로움 속에서 밥벌이를 위해 살아가는 인간들이 나는 측은하다. 그런 날은 가능한 맛있다고 하며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편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밤엔 일기를 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에 외로움은 위로받고 그 정리를 일기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외로움도 사는 것도 별 거 아니다.
외로움으로 어쩔 줄 모를 때 응급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추천할만한 방법이다. 홀로 긴 드라이브를 하며 음성녹음으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글로 쓸 때와 다른 극적인 면이 있다. 모노드라마 한 편 찍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블라블라 떠들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즐거워진다. 언제 외로웠고 화가 났나 싶다. 어쩌다 낚은 멋진 문장은 글로 옮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우면 그만이다. 드라이브 끝에 마주한 바다를 보다가 노을이 지면 그만 집에 가고 싶어진다. 낯선 곳에서 맞는 저녁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외로움은 때로 투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라진 마음으로 차를 몰다보면 몹시 배가 고프고 노란 불빛 간판이 달린 식당으로 들어가 뜨거운 황탯국이라도 혼자 먹다 보면 가족이 보고 싶어 진다. 가족이 있어서, 기댈 곳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외로움은 또 달라진다. 외로움도 발효의 과정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깊어진다. 그러면 외로움이 달콤해진다. 그땐 외로운 것이 아니라 고독한 것이다. 고독하다고 느낄 때 나는 고결하고 완전해진다고 느낀다.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을 어찌할까.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신경림, 갈대)
외롭다는 신호가 오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위로하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면 되는 거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고 피와 살이 되는 필사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