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스승.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중 선한 자에게선 선함을 따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을 보면 나를 고치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잘난 사람에게선 잘남을 배우고, 못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를 반면교사 삼아 나를 고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가,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가,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 상사, 선후배들을 어떻게 대했는가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오십에 읽는 논어 <최종엽>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개를 15도쯤 왼쪽으로 기울인 채 바닥을 바라보는 아이와 그 곁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엄마. 그들을 몇 번이나 스쳐 지나고 나서야 나는 오래전 읽었던 한 문장을 떠올렸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말했다. 선한 사람을 보면 그 선함을 따르고,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 자신을 고치라는 뜻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문장이었지만, 솔직히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을 스승으로 여겨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그들을 반복해 마주치면서부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그녀는 늘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머, 수고 많으세요.” 과장되지도,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담백한 음성이었다. 나이 지긋한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의 굳은 표정이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풀어졌다. 인사 하나가 사람의 얼굴을 바꾸는 장면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 오르내리다 보니, 그들의 표정과 숨결까지 익숙해졌다.
곁에 있는 환이는 엄마가 아무리 환하게 인사를 건네도 함께하지 않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눈치만 살폈다. 그 모습이 꼭 어릴 적 나 같았다.
아홉 살 무렵 농촌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매일 ‘인사하기’라는 숙제를 받았다. 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또박또박 말해야 했다. 인사 뒤에 이어지는 질문들이 두려웠다. 우리 집 사정이며 부모님의 직업이며, 도시에서 왜 내려왔는지까지 묻는 말들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침묵하면 낯가림 심한 아이가 되었고, 머뭇거리면 예의 없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손바닥이 내 머리를 꾹 눌렀다. 고개를 숙이는 각도보다, 그 순간의 숨 막힘이 더 선명하다. 그때의 나는 어른들 틈에서 예절보다 먼저 숨 고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다짐했었다. 내 아이에게는 인사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준비되지 않은 말을 억지로 꺼내게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아이가 말을 흉내 내기 시작하자, 나는 가장 먼저 “안녕하세요”를 가르치고 있었다. 배꼽 위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하고 허리를 숙이게 하면서, 내가 힘겨워했던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되풀이했다. 아이가 인사를 잘 해내면 안도했고, 하지 않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내 체면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즈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환이 엄마를 만났다. 우리는 한 살 차이 외동을 둔 엄마들이었지만 태도는 묘하게 달랐다. 나는 만날 때마다 아이에게 인사를 시켰고, 그녀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인사를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먼저,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인사를 건넸다. 아이가 침묵해도 대신 사과하지 않았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어느 날 태권도복을 입은 환이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엄마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학원 가는 거야?”
환이가 먼저 내 눈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맑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인사는 억지로 밀려 나온 것도, 누군가의 눈치를 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연스러웠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그런 일이 있었다. 엄마가 곁에 없어도 환이는 먼저 인사를 했다.
그제야 보였다. 아이는 말보다 먼저 태도를 닮는다는 사실이. 설명보다 오래 남는 것은, 반복되는 몸짓이라는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스며드는 것이 있고, 가르치지 않아도 이어지는 것이 있었다.
“환이를 수줍게만 봤는데 길에서 먼저 인사를 하더라고요.”
“아, 그랬어요?”
“놀라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어요.”
“워낙 조용한 아이라… 집에 가서 칭찬해 줘야겠네요.”
내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타인이 전해줄 때, 엄마의 어깨는 조금 높아진다. “늘 밝게 인사하셔서 보기 좋아요. 저는 그렇게 인사하기 쉽지 않아서요.” 내 말에 그녀는 빙긋 웃다가 금세 얼굴을 붉혔다. 그 표정이 오래 남았다.
최근에 만난 사람 중 누구를 당신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그 엄마를 떠올릴 것이다. 매일 같은 높낮이로 “수고 많으세요”를 건네던 그녀와, 그 곁에서 조용히 배우고 있던 아이. 그들은 나를 붙잡아 훈계하지도 않았고, 무엇이 옳은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다만 먼저 고개를 숙였고, 먼저 웃었다. 길을 걷다 문득 멈추게 하는 사람, 아무 말 없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 생각해 보니 스승은 그렇게, 조용한 얼굴로 길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