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나누며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때가 왔다'는 말.... 사실 그는 이 말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침에 이 말과 함께 일어나고 밤에 이 말과 함께 잠들었다. "씨를 뿌릴 때가 왔어." 봄에는 이 말과 함께 덧창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수확할 때가 왔어." 가을에는 이 말과 함께 화덕에 불이 지펴졌다. 소젖을 짤 때가, 건초 꾸러미를 만들 때가, 촛불을 끌 때가 왔다는 말도 있었다. 사람이 해와 달과 별처럼 항상 하던 일을 (이참에 완전히가 아니라 또다시) 해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었다.
-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
"덧창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24년 만에 집안 조카를 만났다. 시어머님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결혼해서 다섯 번 정도 만났을까. 작고 마른 체구의 조카는 큰시아주버님의 외아들이다. 나이부터 물으니 50이라고 했다. 열아홉, 스물여섯이었던 조카는 쉰 살이 되어있었다. 이혼을 했고 아이는 없다고. 조카는 50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살짝 웃었다. 장례기간 내내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조카는 여전히 숫기 없는 모습으로 많이 외로워 보였다.
조카의 임신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아주버님은 결혼생활 내내 부인과 불화했고 그 미움은 아이에게로 이어졌다. 폭언과 폭력의 가정은 불행했다. 조카는 당연히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19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지금 큰아주버님은 네 번째의 여자와 살고 있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절연하게 된 이유는 조카의 이혼이었다. 조카는 결혼 1년 만에 이혼하였고(아내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주버님은 조카에게 인연을 끊고 살자며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아마도 자신의 전철을 밟는다고 생각했을까. 아들의 현실을 마주 할 자신이 없던 것일까. 그저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되는데,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조카는 아버지의 그 말이 가장 충격적이었고 상처라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양복을 입고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고.
처음엔 서먹하니 인사만 했다. 둘째 날 저녁 9시가 넘어가자 조문객은 다 돌아가고 가족들만 남았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발인이 예정되어 있어서 함께 밤을 새울 요량이었다. 가족들은 몇 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아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장례 일정을 주고받았다. 캔맥주를 손에 든 조카가 앞에 와 앉더니 그간 살아온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응, 응, 그랬구나. 저런, 하며 듣기만 했다. 어느새 나도 캔맥주를 들고 있었고 둘째 큰댁 형님 내외와 사촌들까지 모여 조카의 이야기를 들었다. 더러 쯧쯧 혀를 찼고 더러는 이런~~~~ 욕을 하기도 하면서 안쓰럽게 웃었다. 조카의 상처가 너무 많고 깊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말은 안 해도 모두 조카를 위로하고 있었다. 조카가 둘러앉은 친척들을 돌아보더니
"아, 이렇게 떠드는 것, 이렇게 수다 떠는 것, 너무 좋아요."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불 꺼진 뒤쪽 식탁에 혼자 떨어져 앉아 졸고 있던 큰아주버님이 놀란 듯 아들을 쳐다보았다.
나는 조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앞으로도 이렇게 수다를 떨고 싶냐고 물었다. 조카는 그러고 싶다고, 이런 수다가 많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수다를 잘 떠는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 했더니 뭐, 정기적으로 만남이라도 가질까요?라고 물었다.
"아니,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바로 글쓰기지."
조카는 글을 쓰라고 권하는 내게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작은어머니는 국문과를 나왔으니 그게 가능하겠지만 자신은 제 이름 석자 외에 쓸 말이 없다고 했다. 글쓰기와 국문과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글을 쓰는 내가 우연히 국문과를 나온 것뿐이라고, 글은 쓰는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글을 써 보라고 권했다. 마음에 드는 펜과 노트를 하나 사라,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핸드폰에 써 봐라, 그것도 어렵다면 음성녹음을 하고 그것을 텍스트로 변환하면 된다. 화가 났을 때, 불행하다고 느낄 때, 일하면서 느끼는 부조리한 것들, 외롭다고 혼자 소주라도 마실 때, 아버지가 미울 때, 어머니 생각이 날 때, 글을 써 봐라. 그게 곧 수다다. 미처 모르고 살았던 자신을 만나는 놀라운 일이 생길 거 다. 너는 설명할 수 없는 힘과 에너지로 상처에서 회복될 거고 네가 변화되는 걸 주변이 먼저 알아차릴 거다. 너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고 전에 없던 삶에 대한 존중이 일어날 거다. 경험자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 조카의 눈이 빛났다. 조카는 오길 잘했다고, 할머니 덕분에 친척들을 만나서 참 좋다며 빈 맥주캔을 만지작 거렸다.
조카에게 글쓰기를 권한 것은 나 자신이 "수다"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다를 풀어놓는 것이 글쓰기라는 것, 수다를 풀어놓음으로써 나를 짓누르는 무언가에서 해방되고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에서, 아픈 상처에서, 용서하지 못할 분노에서, 삶의 무의미에서, 외로움에서, 실패의 기억에서 나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글로 수다를 푸는 글쓰기는 단순한 치유에만 머물지 않고 성장과 변화로 이끄는 일이다. 자신을 발견하며 보이지 않던 삶의 비밀을 보게 되는 일이다.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외롭고 상처 입은 우리 영혼에 닫힌 '덧창을 열고 빛이 들어오는' 것, 그것이 글쓰기다. 글은 특정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쓰다 보면 특별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쓰기를 붙들고 있으며 매 번 새롭게 시작하고 휴지기는 있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 거다.
조카는 글을 쓸까? 글쓰기라는 진정한 수다의 맛을 알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스스로와 수다를 떨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상처를 다스리고 아버지와 소주 한 잔 하는 관계로 변화되어 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겠다.
조카님, 용기를 내 봐.
글쓰기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야.
조카님 자신과 수다를 잘 떨기를 바라. 가끔 그 수다를 내게도 들려주면서 조카님의 외로움에서 조금은 해방되었으면 좋겠어. 글을 쓰며 수다를 떨다 보면 "덧창이 열리고 빛이 들어" 올 거야. 믿어도 돼. 내가 엄청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