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엄마가 우리에게 준 선물.

가난했지만 빛나던 하루.

by fragancia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특정한 시기, 즉 열 살부터 서른 살 사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의 기억이 이렇게 우세한 것을 ‘회고 절정’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사람들에게 살면서 겪은 일을 회상해 보라고 요구할 때 분명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책, 음악에 대해 줄줄 이야기할 때에도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하나의 인간으로 형성되는 그 시절에 들은 노래나 그때 본 영화에는 그 사람이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과 그 사람 자신을 연결시켜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가 있다.

- 기억한다는 착각.(차란 란가나스)


Q. 행복했던 시절의 경험 한 가지를 소환해 주세요.




여름방학의 공기는 들떠 있었다. 땀 냄새와 매미 소리, 그리고 골목에 먼지 섞인 바람까지도 계절의 일부였다. 30대 초반이던 엄마는 우리 남매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와 여섯 살이었던 남동생은 연신 집에서 접은 종이부채를 흔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간판의 페인트가 조금 벗겨져 있었고, 매표소 유리창은 오래된 햇빛에 뿌옇게 빛나고 있었다. 건물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 데이트를 온 연인들, 그리고 가족 단위의 관객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작은 극장이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 손을 꼭 잡고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날 처음 본 영화는 1992년에 개봉한 「베어」였다.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가 만든 영화로 1988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의 나는 그저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던 아기곰 두스와 큰 곰 바트를 바라보는 아이였을 뿐이다. 대사 하나 없이 다큐멘터리 같았던 이야기 속 몇몇 장면들음 지금도 또렷하다. 부드러운 봄 햇살 속에서 태어난 아기곰 두스가 엄마와 꿀을 파먹던 장면은 귀여운 곰인형처럼 보였다. 그러다 엄마곰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순간 극장 안은 숨을 삼키듯 고요해졌다. 어린 나는 그 상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분명히 기억한다. 혼자가 된 두스가 세상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가던 모습은 어쩌면 그때의 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보았던 세상은 늘 크고 낯설었으며 엄마의 손을 놓지 않으려 애쓰던 아이였으니까.


두스가 상처 입은 큰 곰 바트를 만나고, 그 곁을 맴돌며 상처를 핥아주던 장면에서 나는 혹시 두스가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까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바트는 두스를 받아들였다. 세상은 잔인하지만, 그 안에는 다시 기대어 설 수 있는 어깨가 있다는 것. 어린 마음에도 안도감이 스쳤다. 그들은 사냥꾼들에게 쫓겼다. 드디어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대사가 나왔지만, 나는 곰들에게 집중하느라 자막을 휘리릭 넘겨버렸다. 절벽 끝에 몰리던 긴박한 순간들 속에서도 바트는 끝내 인간을 해치지 않았다. 힘이 있다는 것이 반드시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 여름 작은 극장에서 처음 배우지 않았을까.


최근 『기억한다는 착각』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특정한 시기, 즉 열 살부터 서른 살 사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의 기억이 이렇게 우세한 것을 ‘회고 절정’이라고 부른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여름날의 극장을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을 말해보라고 하면, 우리는 유독 그 시절의 것들을 줄줄 이야기한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하나의 인간으로 형성되는 그 시절에 들은 노래와 본 영화에는 이상적인 자기 모습이 스며 있다. 영화관에서 처음 본 「베어」가 내게 그런 의미였다. CG 없이 담아낸 실제 동물들의 모습은 시각적 이미지와 음악만으로도 깊은 감정을 전했고, 어린 내 마음에 오래 남는 울림을 주었다.




외식 한 번 제대로 못 했던 가난한 시절, 영화관 나들이는 우리에게 더더욱 특별했다. 아마 엄마는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세 식구의 입장권 값을 계산하며 이번 달 살림을 머릿속으로 다시 짜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를 극장에 데려갔다는 사실을,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 이해한다. 엄마에게도 그날은 작은 모험이었을 것이다. 삶이 빠듯해도 아이들의 눈에 한 번쯤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젊은 엄마의 용기.


아쉽게도 그날의 엄마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올려다보던 옆모습, 가끔씩 우리 쪽을 돌아보며 잘 보고 있는지 확인하던 눈빛은 그려볼 수 있다. 어쩌면 나의 ‘회고 절정’ 속에는 곰 두 마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감싸 안고 있던 엄마의 젊은 숨결이 자리하고 있음을 이젠 느낄 수 있다.


사십 대가 된 지금도 바트와 두스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상실을 겪고도 다시 관계를 맺는 용기, 힘을 가졌으되 해치지 않는 선택, 그리고 결국 함께 동굴을 찾아 겨울잠에 드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삶은 사냥꾼처럼 위협적일 때가 많지만, 끝내 우리가 돌아갈 곳은 누군가의 곁이라는 사실을 그 영화는 말해주었다.


기억은 종종 왜곡된다. 그러나 어떤 장면들은 왜곡을 넘어 정서로 남는다. 작은 극장의 눅눅한 의자, 여름밤의 열기, 엄마 손의 온기, 스크린 위를 달리던 두스의 발걸음. 그것들은 내 안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그 후 여러 영화를 보았지만 그 여름의 극장의 기억을 대신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도 그 장면은 마음속에 눈처럼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인생의 겨울이 와도, 내 안에서는 여전히 그 여름방학의 극장이 불을 밝혀준다. 어둠 속에서 건네받은 그 시간은, 지금도 내 삶을 따스히 데우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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