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나누며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너무 좋아'는 재능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무언가를 끝까지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그만이 가지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연인이든 아이돌이든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무치게 좋아한 경험이 있다면 그 자체가 곧 스펙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오래된 이메일에 예전부터 쓰던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에 사물함 비밀 번호에 여전히 살아있지 않나요? 이름부터 생일까지 그 시절 좋아했던 대상에 대한 흔적이요, 어린 날의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답니다. 지금 당신의 '너무 좋아'는 무엇인가요?
- 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고 "
친구들과 드레스 코드인 프렌치 코트로 차려입고 경복궁 가을 나들이 후 인사동으로 몰려가 파전에 막걸리를 먹었을 때, 밤을 새우며 긴 장편 소설을 읽고 났는데 동이 틀 때, 첫아이의 이가 나오고 처음 걸었을 때, 기대하지 않던 보너스가 들어왔을 때, 배가 고파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을 때, 여행 중 긴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이 뻥 뚫려 있는 길을 달릴 때, 자전거로 긴 내리막길을 타고 질주할 때, 땀을 흠뻑 흘린 후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 때, 다시 읽으려고 꺼낸 책에 5만 원이 들어있을 때, 강아지 투투가 혀를 빼물고 나를 향해 달려올 때, 막 배송된 커피 원두를 갈아 물을 부을 때 부풀어 오르는 빵과 향을 느낄 때 나는 '너무 좋아!'서 몸에 전기가 감전된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 너무 좋다고 느끼는 그 순간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 반짝이는 그 무언가는 신비한 마법이다. 좋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어도 그 모든 걸 한방에 날려버리는 힘이 거기, 그 순간에 있다.
요즘 "너무 좋은" 것은 색연필로 그리는 강아지 그림이다. 우리 집 개 투투를 그리고 있는데 그릴 때마다 진일보하는 실력을 확인한다. 너무 좋다! 마무리가 끝난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면 투투는 인스타에 사는 개가 된다. 이 순간은 너무 좋아서 다른 것은 필요 없어지고 나는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훌륭한 노년을 보내며 자존감 있게 사는 삶은 다음 몇 가지를 꾸준히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것은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산책을 즐기는 것,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것, 기꺼이 고독 중에 있는 것이란다. 특히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 후 산책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률이 현저히 낮다고 한다. 나는 암이나 기타 불치병도 두렵지만 치매가 가장 무섭다. 우연히 내가 선택한 나의 놀이들은 그저 무용한 것들이 아니다. 무용한 이것들이 나를 지키고 관계를 지키고 가족을 지킨다. 내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활동에 푹 빠져 사는 동안 다른 것엔 관심이 덜 가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남편에게 강짜를 부리거나 시어미 노릇을 한다거나 가질 수 없는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스스로를 지옥에 보내버리거나 남과 비교하며 불행하게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식들이 걱정을 불러일으켜도 노년의 팍팍한 경제 사정으로 주머니가 비어도 어쩔 수 없이 쇠락해 가는 몸도 그 외 많은 근심거리들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그럴 시간에 나는 투투를 그리며 몰입에 빠진다. 그러니 마법일 수밖에.
남편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마른안주의 꼬릿한 냄새에 이끌린 투투가 옆에 가 앉아있다. 너는 먹으면 안 된다고, 저녁밥 먹은 지 금방이라며 타이르던 남편은 투투의 말없는 재촉에 그만 또 헤프게 간식을 내주고 만다. 쯧쯧쯧, 혀를 차면서도 나는 얼른 투투를 그린다. 투투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그림의 소재다. 빛에 따라서 달라지는 투투의 털색과 순간의 표정들을 그리는 일은 신나고 기쁘다. 그림을 망치는 일은 없냐고? 나는 독학자다. 왜 없겠는가. 망치면 망치는 대로 그린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수록 망치는 일이 줄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투투를 그리고 난 후 "너무 좋아!"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아주 특별한 기쁨이다. '너무 좋아는 재능'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무래도 개 그림에 재능이 있나 보다. 개화가로 거듭나고 있다고 주변에 밝히니 모두 유쾌하게 웃으며 격려해 준다. 우리 집 개 투투를 그리는 시간은 진짜 "너무 좋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언제, 무엇을 통해 너무 좋은지 묻고 싶다. 내 아이를 닮은 손자의 얼굴, 막 벌어지는 꽃봉오리,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 낯선 곳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이륙, 이국적인 풍경,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눈빛, 아이의 취업 소식, 시험에 합격했을 때 발견하는 이름 석자, 무언가를 계획할 때의 설렘, 아직 오르기 전의 가격으로 기름을 파는 주유소를 발견했을 때, 수영 후 맞닥뜨리는 겨울의 쨍한 추위, 나는 듯 걸어가는 댕댕이의 즐거운 엉덩이 율동.... 이 모든 순간은 '너무 좋은' 순간이다. 그 순간이 반짝이는 건 사실 우리의 마음이 반짝이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인 것이다. 빼곡한 수풀에 가려 흐르는 개울물이 드문드문 햇빛에 반짝이는 것처럼 그렇게 반짝이는 것이다. 봄을 맞아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왁자하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오늘 내가 마주하는 '너무 좋은' 순간이다. 나는 마음껏 그 순간을 바라보며 음미하고 기뻐한다.
"너무 좋다"는 것에는 특유의 몰입이 있다. 몰입은 나를 무아지경으로 이끌고 평소에 넘지 못하던 장애와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게 한다. 몰입을 경험할수록 기쁨은 지속되고 나는 성장하며 낡은 일상은 반짝거린다. 주변을 둘러본다. 반짝거리는 것 투성이다. 나도, 그대도 그중의 하나다. 너무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