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러 당근에 갔다가 책으로 돌아왔다.

책 보다 관계가 먼저 보였던 시간.

by fragancia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사람들은 실수를 피하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실수 이후의 태도다. 후회로 끝난 실패는 교훈이 되지 않는다. 복기 없는 감정은 그저 찌꺼기고, 복기 없는 회복은 반복될 상처다. 삶이 달라지고 싶다면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구조부터 복원해야 한다.

무엇이 나를 무너지게 했고, 무엇을 놓쳤고, 다음엔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복기 없는 사람은 결국 같은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서 반복하게 된다.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어제의 하루를 끝내기 전에 해체해봐야 한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무너졌던 방식부터 기록해야 한다.

- 각성. (김요한)


Q.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올해 초 나는 하나의 작은 목표를 세웠다.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해보는 것.


코로나 이후로 오랫동안 온라인에서만 책 이야기를 나눠왔다. 화면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독서 토론도 충분히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앉아 책 이야기를 나누면 어떤 기분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분명 따뜻할 것 같았다. 그 단순한 기대가 시작이었다.


동네 플랫폼에서 독서 모임을 발견했고, 몇 번의 대화를 거쳐 참여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 모임에서 운영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모임 날짜를 정하고, 책을 협의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일까지. 낯선 사람들과 책을 이야기하는 경험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신선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문장을 붙잡고, 전혀 다른 생각을 꺼내 놓는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책이 사람을 연결해 주는 느낌에 다음 만남까지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모임을 한 번, 두 번 거듭할수록 마음에 조금씩 다른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서로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격려하다가도, 돌아서면 다른 사람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겉모습이나 대화의 결이 맞지 않는다며 편견 섞인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놀랐다. 누군가는 자기 지식과 삶을 자랑했고, 인정의 눈빛을 갈망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묘하게 한 발짝 떨어져 침묵을 택했다.


독서 방식도 저마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책을 깨끗하게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밑줄을 긋고 접어가며 자기 방식대로 책을 사용했다. 문제는 그 차이가 어느 순간 평가처럼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책을 함부로 읽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말들이 있었고, 내가 추천한 책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취향은 다르고 독서법도 다르니까.

‘그럴 수 있지.’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하면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독서를 이어가면서도 마음 한편에 묘한 불편함이 남았다. 크지는 않았지만, 모임이 이어질수록 그 감정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온라인 독서토론 모임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가져와 이야기했다. 누가 더 잘 읽었는지를 겨루는 분위기도 없었고, 독서 방식에 대한 평가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생각을 꺼내 놓고 서로의 시선을 빌려 책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성숙한 운영자가 모임을 이끌었고 내 방식대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필사를 하고, 문장을 정리하고, 생각을 천천히 확장해 가는 과정. 그 단순한 루틴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맞는 독서 토론의 방식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 쪽에 가까웠다.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책 보다 관계가 먼저 보였고,

온라인 모임에서는 관계보다 책이 먼저 보였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아, 나는 지금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균형을 관리하고 있구나.'


그때부터 모임과 인간관계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이 궁금했다. 많은 글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할 일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어떤 관계가 나를 지치게 하고 부담이 된다면,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을 권했다. 우리는 종종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괜히 예민해 보이기 싫어서 불편해도 관계를 질질 끌고 가 된다. 하지만 무시한 감정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든 모임원들이 있었기에 쉽지 않았다.


세 번째는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서서히 거리를 두는 일이었다. 모든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조금씩 내 시간을 되찾는 과정 말이다. 나는 첫 만남보다 마지막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오래 고민했다.


결국 나는 모임을 정리하기로 했다. 후회나 미련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떤 선택이든 한 번 결정했다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관계를 끊은 뒤 다시 엮이지 않기 위해 모임에 대한 기록들을 꼼꼼히 남겼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정말 중요한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먼저, 나와 나 사이의 관계라는 것.

내가 편안할 때, 내가 무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성장도 가능하다.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찾는 순간 관계는 쉽게 흔들린다. 좋은 책을 찾는 일은 조금 다르다. 책은 나를 평가하지도 않고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한 페이지씩 내 생각을 넓혀줄 뿐이다.


사람을 만나러 당근에 들어간 건 실수였다. 내가 썼던 시간과 에너지를 더 이상 쏟지 않기로 다짐했다. 감정의 찌꺼기를 말끔히 치우고, 나와 더 결이 맞는 온라인 독서토론 모임에서 계속 책을 만날 것이다.


어떤 관계는 끝나야 비로소 내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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