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며 나누며
*이 매거진은 "따스한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이 매거진은 fragancia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버려 두자'라는 말이 '잊어버려라'라는 말과 같은 뜻이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 '잊어버려라'라는 말은 무언가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굴복하는 느낌이다. '내버려 두자'는 이와 정 반대다. 힘을 의미한다. '내버려 두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내려놓고 일이 진행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을 내버려 둘 때 당신은 엄밀히 말해서 당신이 갖지 못했던 통제를 풀어주겠다는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렛뎀(let them) 이론, (멜로빈스) -
" '내버려 두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콩나물 하나를 무치기라도 하면 온갖 양념이 다 나와 바닥이 즐비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고령이 되시니 더 정리가 안 된다.
엄마의 방은 발 디딜 곳이 없다. 각종 옷가지와 성당 성물들, 손자들 사진, 액자, 자질구레한 장식품들, 열 두 자 농과 천장까지 닿은 수납장엔 이불과 옷으로 가득 차있다. 매트리스 위엔 텐트가 올라가 있고 공기 청정기에 대형 가족사진 액자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6인용 식탁 위엔 영양제와 약, 간식거리 등이 점령했고 거실은 가히 식물원, 아니 그냥 식물원이다. 남이 버린 화분을 주워다 기가 막히게 살려 키우는 엄마의 능력 탓이다.
냉장고는 송곳 하나 꽂을 데가 없다. 나물 삶은 것, 곡물류, 고기, 지난 명절에 남은 음식들, 동생이 사다 나른 다이어트 밀키트들... 부엌엔 그런 냉장고가 두 대나 있고 창고엔 김치냉장고 두 대가 더 있다. 두 식구 사는데 냉장고가 모두 네 대다. 창고엔 갈무리해 놓은 양파, 마늘, 고추, 감자, 형제들이 두고 간 물건들- 각종 앨범, 상장류, 전공책 -과 아무도 입지 못 하는 코트와 이불류, 캐리어, 작은 수납장과 책상, 책꽂이, 장롱 등 길게는 50년에서 짧게는 10년 된 물건들이 쌓여있다.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정리를 시도했지만 엄마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어느 여름, 천식이 도진 엄마는 입원을 하셨고 집을 비우셨다. 나는 냉장고 정리용 투명 용기와 수납 박스 등을 종류별로 사들고 갔다. 냉장고에서 나온 음식들과 싱크대 안에 있던 플라스틱 물건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엄마 자신도 뭐가 뭔지 모르는 물건들, 음식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엄마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언짢았다. 냉장고의 절반을 비워냈고 포장용기 등 플라스틱 그릇들은 자루에 담아 버렸다. 창고의 물건은 내용 분류가 되지 않아 빈 박스와 오래된 책들만 골라 버렸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일이 어두워져서야 끝났다. 그나마 일부였지만 부엌과 다용도실 정리를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웠다. 핼쑥한 모습으로 퇴원한 엄마도 좋으신지 책처럼 꽂아진 냉동고 안 용기들과 써붙인 글씨들을 읽어보시며 자꾸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셨고 다용도실을 들여다보시곤 훌륭하다고 칭찬하셨다. 엄마의 방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놔두고 화장실과 거실의 화분들, 책장은 동생이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한 주 후에 들여다본 엄마의 냉장고는 제법 정리를 유지했지만 다시 검은 비닐봉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동생은 실실 웃으며 소용없다고 했다. 두 달 후쯤엔 냉장고에 있어야 할 투명용기들이 커다란 박스에 담겨 다용도실 한 구석에 놓여있고 검정 봉지, 흰 봉지 등에 담은 음식들이 다시 냉장고에 들어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파한 나는 아무 말 없이 용기가 담긴 박스를 차에 실으며 낭패감에 얼굴이 붉어지고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엄마는 살던 대로 살 거라며 놔두라고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 이래야 해, 저렇게 하세요, 엄마 돌아가시면 그거 다 흉거리야, 했지만 늘 원래대로 돌아갔다. 뭔 놈의 약들은 그리 많은지. 유통기한 지난 영양제를 버리려고 했다가 모녀는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가 물으셨다. 너는 왜 자고 가지 않냐고. 엄마의 집까지는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의 거리다. 자고 올 정도의 먼 거리는 아니지만 나는 왜 엄마의 집에서 자지 않을까. 몇 년 전 엄마가 크게 아픈 후 나는 때가 됐다는 심정으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기 싫어서였고 동생과 함께 엄마를 돌봐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매주 두 번씩 음식을 해 가고 집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마당의 잡초를 뽑고 잔심부름을 하고 동생이 바쁠 땐 병원 동행도 했다. 그렇게 오고 가면서도 하루쯤 자고 간다고 집에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의 집에선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누이면 주변엔 온통 정리해야 할 것과 치워야 할 것들이 보이는데 어떻게 잠을 자겠는가.
처음에 엄마는 고마워하셨다. 딸 중에 내가 최고라고 하셨다. 그러다 점점 정리하는 건 버리는 거라고 여기며 싫어하셨고 급기야 동생과 나누는 내 험담을 듣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필 현관문이 열려있었고 신발을 벗기 전에 두 사람 대화가 들려왔다.
"얘, 느 언니 어디쯤 오고 있는지 전화해 봐라."
"언니 쫌 있으면 올 텐데."
" 난 느 언니 오는 거 너무 부담스럽다. 그만 왔으면 좋겠어."
"보고 싶다며~ 자주 오라고 할 땐 언제고."
"아유, 얘, 너무 부담스러워. 내가 뭘 그리 어질러놨다고 자꾸 치운다는 건지.... 걘 확실히 나 안 닮았어. 니가 편해. 느 언닌 불편하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엄마의 본심을 알게 된 날, 사들고 간 탕수육도 제대로 못 먹고 우물거리다가 나는 바쁜 일이 있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멍한 상태로 오다가 과속 딱지를 끊었고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섭섭해서 마음이 몹시 쓰렸다. 몰라도 어떻게 그리 모를까. 칫, 나도 일 안 하면 편해. 그 욕심과 고집은 뭐란 말인가. 엄마의 집을 치우고 청소하는 건 천식환자인 엄마가 조금이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길 바라서였다. 그런데 그만 왔으면 좋겠다니.... 엄마의 말이 내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매주 가던 방문을 10일에 한 번으로 줄였고 몇 가지 사건이 더 일어나면서 엄마집에 대한 신경을 껐다. 내버려 두었다.
"'내버려 두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내버려 두는 것이 처음엔 어렵고 괴로웠다. 엄마의 태도와 상관없이 내가 포기해 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옳고 엄마가 틀렸는데 엄마는 왜 옳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왜 그렇게 벌여놓고 사나, 왜 버릴 줄 모르나,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 방식으로 밀고 나갔지만 엄마는 완강했고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나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엄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엄마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이건 하지 마, 내가 할게, 하며 애를 썼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이 있었다. 하도 삶아서 투명해진 속옷은 버릴 것이 아니라 마당 어딘가를 닦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물건이고 편의점 의자를 거실에 들여놓은 것도 당신이 다루기에 가벼워서였다. 물건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또 어찌나 많은지. 많은 물건을 끌어안고 사는 것도 엄마의 삶이었다. 끌어안고 산다고 보는 것도 내 관점이었다.
'내버려 두자'는.... 힘을 의미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내려놓고 일이 진행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는 엄마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엄마가 욕심이 많고 집착이 강한 것이 아니냐고. 나라면 안 그럴 텐데, 하고 비교했다고. 하지만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엄마집에서 살 자유가 있다고, 그걸 억지로 내 방식대로 바꾸려 하면 모녀 의만 상하니 이젠 내버려 두기로 했다고, 그동안 날 참아줘서 고맙고 엄마집에 개입해서 미안했다고. 그러자 엄마 왈,
" 니가 맞아. 하지만 난 이렇게 사는 게 편해. 너는 나 안 닮아서 다행이야. 저기 소쿠리 필요하면 가져가라. 난 없어도 돼. 내 물건 하나 치워주라. ㅎㅎ 고추장도 가져가고. 내 새끼 주는 건 안 아까워."
"따스한 필사" 50기에 등장한 이 문장을 보고 엄마와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쓰면서 오래 머물고 곱씹었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생각했다. Let them.... 내버려 두라....
내버려 두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의심 없이 흔들리지 않는 강한 확신과 옳다는 신념으로 원하지 않는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내버려 두는 것보다 훨씬 쉽다. 자신이 관여해야 일이 올바르게 진행될 거라는 믿음, 그 사람을, 그의 방식을 조금만 고치고 신경 써주면 만사 해결될 거라는 확신은 Let them이 아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봐주지 못하는 나의 박약한 인내심과 조바심, 편견, 자기만의 주관적 확신과 얄팍한 경험을 근거로 둔 믿음은 "내버려 두기"를 어렵게 한다.
나는 이제 엄마를 내버려 둔다. 천식환자인 엄마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 기어이 마당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하지 말라는 말 대신 마스크를 씌워준다. 뭘 이렇게 많이 샀냐는 말 대신 나도 필요하니 좀 달라며 가져온다. 엄마가 주는 것은 필요하지 않아도 군소리 없이 받아 들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하지 않는다. 요즘은 엄마를 보러 자주 가야 한다는 강박도 죄책감도 없다. 나도 엄마도 살던 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간섭 없이 산다. 그래도 별일 없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서 만남이 오히려 반갑고 기쁘다.
내버려 두기 힘든 일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휠체어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 태워드리마, 했더니 내버려 두란다. 운동하는 거라고. 밤낮을 거꾸로 사는 머리 큰 아들, 등짝을 후려치고 싶지만 내버려 둔다. 어린애도 아니고 밤에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거다,라고 믿는다. 결혼 6년 차 아기를 낳지 않는 아들부부, 손주가 궁금하지만 내버려 둔다. 낳으라고 재촉한다고 낳을 것도 아니고 재촉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다 계산하고 계획한 각자의 선택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습관들, 내버려 둔다. 나도 그런 거 있다. 잘 안다고 생각한 친구나 남편의 이면, 모른 척해 주는 게 예의다. 내게도 그런 점이 있을 수 있다. 분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이웃, 이상한 옷차림들. Let them. 남 신경 쓸 거 아니다. 온갖 매스컴을 오염시키는 정치인들의 언행, 내버려 두고 투표로 보여준다. 내버려 둘 것은 내버려 두자. 오히려 그것이 용기이며 배려이고 여유 있는 믿음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을 내버려 둘 때 당신은 엄밀히 말해서 당신이 갖지 못했던 통제를 풀어주겠다는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