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시
백석 저/ 다산책방
약 10년 전쯤 1년동안 매일 시 한편을 외웠다.
문해력을 기르고 문학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 작전이 성공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 백석을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곁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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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짧은 시로도 아주 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시 앞에선 한참을 먹먹이며 서성거리야만 한다.
여승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 날이 있었다
또 백석의 시는
나의 심상을 저의 것처럼 잘 그려낸다.
무작정 한없이 가벼운 날, 내 가벼운 발걸음은 잠풍날씨가 좋은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나마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무엇보다도 백석은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을 왠지 나타샤가 흰 당나귀를 타고 나타날 것 같이 만들었다.
그리움을 이토록 눈부시게 응앙응앙 읊을 자가 누가 있을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제 다시 백석을 읊으며
그의 단어가, 그의 심상이 내게 알알이 박히기를 염원한다.
여전히 백석은 나의 모던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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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재미없다거나
왜 시를 읽는 지 모르겠다면
백석의 시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