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섬 78번지

게토에서 살아남기

by 나살린

<25년 독서계획-소설읽기>



25년도가 벌써 2월이 되었다.

올해는 장편 소설을 많이 읽는 해로 정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장편 소설을 잘 읽지 못하는 조급함과 산만함을 극복하고도 싶고,

인간 삶의 구체적 조건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다.

망원경 여러분의 독서계획은 어떠하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25-1 소설


희망의 섬 78번지


우리 오를레브 저/ 유혜경 역/비룡소



12살 알렉스는 폴란드의 어느 지역 게토에 사는 아이다.


2차 세계대전은 유대인에게 게토마저도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공간으로 몰고 간다. 모두 어디론가 끌려가는 동안 알렉스는 게토 78번지에서 아빠와 만날 것을 약속하며 홀로 도망친다.


전쟁의 공포와 혼자서 무엇이든 해야하는 두려움과 싸우며 78번지에 자신만의 진지를 구축한다. 알렉스 옆에는 항상 무슨 말이든 묵묵히 들어주는 스노우가 있다(스노우는 흰색 쥐다). 그리고 아빠가 준 권총 한 자루도 가슴에 품고 있다.


게토는 마치 대양에 갇힌 섬 같다. 주변에는 폴란드인이 사는 거주지가 있지만, 쉽사리 건너갈 수도 또 쉽사리 건너올 수도 없다. 이 갇힌 섬에서 홀로 5개월을 고군분투하는 알렉스, 그 5개월이 지난 후엔 아빠도 알렉스를 못 알아볼 만큼 다른 존재자로 변모해 있었다.


더 이상 부모의 사랑만을 받는, 혹은 부모의 잔소리를 헛소리로만 아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양식을 얻기 위해 길을 개척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도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권총도 쏘고, 자신의 삶을 지키는 요새를 구축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간 것이다.


알렉스의 고군분투가 그저 옛이야기 나부랭이로 여겨지진 않는다.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여전히 총소리가 들리고, 우리도 하마터면 총성이 난무하는 지옥이 될 수도 있었고, 개인은 늘 홀로 게토에 갇힌 듯 삶의 터에서 고군분투한다.



알렉스에게는 그 삶을 지탱해준 것이 ‘아빠와 만난다는 희망’이었다.

희망은 언제나 이중시제로 작동한다.

언제가 실현될 것이라는 미래의 시제와 그럼으로 지금을 그에 맞게 살아야 하는 현재의 시제로 말이다.


우리에게도 꼭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과 스노우 한명 쯤 있으면 또 한번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p188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다. 울음은 목구멍에서부터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프레디 아저씨는 나를 힘껏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떨려왔던 것은 바로 터져 나오려는 울음 때문이었나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뭐든지 아빠가 가르쳐 준 그대로 능숙하게 해냈다. 방아쇠를 당기는 법, 흔들리지 않게 총을 잡고 있는 법, 안전장치를 푸는 법, 목표물을 일직선상에 두는 법, 한순간도 주저하지 말 것,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나중에 할 것 등등.... 만약 총을 겨누고 있는 손이 떨린다면 그 총잡이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아무리 울음을 그치려 해도 그칠수가 없었다. 내가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 사람 역시 야만인들이 프라이데이를 잡아 먹으려고 했을 때 총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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