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살린 Dec 22. 2018

03. 귀명창, 은민이

     

은민아, 처음 책을 읽자고 했을 때, 왜 그렇게 열심히 읽었어?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다음 생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절실한 이유였어.

남 탓하거나 현실을 도피하거나 다른 사람을 바꾼다고 해도 바뀔 것 같지 않은 현실이 지옥 같았어. 책을 읽으며 생각 전환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며 자신감과 이해력이 향상되었지. 책의 가르침과 인생을 연결하며 계속 실험하고 연습하고... 그런 과정의 혜택을 누리다 보니 책을 읽는 에너지가 증가하고 계속해서 선순환되며 지금까지 책을 놓지 않고 읽고 있지     


짧은 질문에 확신에 찬 긴 답이 돌아왔다.

은민이는 스스로를 책 자폐증이 있다고 진단했다.

교과서와 수험서 이외에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는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고

나는 끊임없이 지껄여댔다.     


한 번은 충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시계를 등지고 앉은 나는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그때 읽은 설익은 ‘니체’를 주절거리고 있었고 은민이는 시종일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내가 듣는 귀가 그리웠다는 것을 그때 알았고, 그 경험이 내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말하는 입과 듣는 귀로 같이 책을 읽었다.

점차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고 서로를 듣는 귀가 되어 갔다.     

이제 은민이는 조선 유학에 조예가 깊어졌고, 나는 많은 부분을 그에게 빚지고 있다.


2018년 12월 15일, 은민이는 미야지마 히로시의 『나의 한국사 공부』를 발제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발제문은 이, 내용 모두 너무나 훌륭했다    

귀명창 은민이가 없었다면, 나의 책 읽기와 우리의 독서 운동은 초반에 좌초되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2. 짜라투스트라는 대체 뭐라고 한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