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음의 진보

카렌 암스트롱 저

by 나살린

* 이글은 2019-03-13 울산 저널에 실린 서평입니다.

http://m.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6044214195#_enliple




세계적인 종교학자이자 종교 비평가인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적 에세이다. 17세에 신을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수녀원에 들어가 7년 만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환속한 후 세상과 신과 새로운 관계 맺음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축의 시대’(기원전 8~3세기) 구도자들은 안락한 집을 떠나 넓은 황야로 나가 다양한 가능성에 몸을 던져 단독자로 신 혹은 자신 앞에 섰다. 그러나 그녀에게 수녀원은 넓은 다양성의 황야가 아니라 어린 수녀에게 견디기 힘든 절제와 순종의 고통만 안겨주는 좁디좁은 감옥이었다. 감정과 행동은 억압받았으며 차츰 신과도 그리고 자신과도 멀어져만 갔다.


결국 그녀는 7년 만에 환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닫힌 문을 뒤로하고 나왔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도 수녀원에도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7년 만에 달라진 세상, 7년 동안 굳어진 감정, 그리고 7년 만에 생긴 간질은 그녀를 더욱 세상과 갈라놓았고 자신이 완벽한 패배자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다행히 그녀에겐 공부가 있었다. 수녀원에 있을 때부터 전공한 영문학은 그녀가 세상에 다시 나올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영문학자가 되려는 순간, 그녀가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 데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닫힌 문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문은 다른 곳을 향해 열려 있었다. 친구의 권유로 쓰게 된 <좁은 문으로>란 자서전이 큰 반향을 얻게 된 것이다. 이후 <세상 나들이>라는 후속 편을 썼지만 그녀는 그 책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것이 이 책 <마음의 진보>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BBC의 종교 다큐멘터리를 맡으면서 비교종교학이란 분야를 발견해 본격적으로 종교 비평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를 공부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돌아 나왔던 종교의 길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세계 종교들을 비교하면서 그들 모두 갖가지 신조와 경전을 갖고 있지만 그 속에는 공통적으로 타인과의 ‘공감’이 흐르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녀 자신도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서 자신만의 프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느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녀가 오래전 수녀원에 짐을 싸던 그 순간에 갈구했던 신에 대한 열망, 수녀였을 때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영혼의 충만감을 느끼게 된다.


현재 우리와 함께 숨 쉬고 고뇌하고 있는 카렌 암스트롱의 인생은 우리 모두의 인생처럼 닫힘과 열림의 반복이다. 그녀 역시 우리처럼 닫힘 앞에서는 한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자책하고 불안해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또 다른 열림에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이끌려 나가면서 한발 한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다. 그녀가 책의 머리말에 소개한 T.S. 엘리엇의 <재의 수요일>처럼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지만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제 종교와는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각본에 따라서 움직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살다 보니까 처음에 신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가방을 꾸려서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 내가 추구했던 모습으로 어느새 내가 바뀌어 있었다.”


이 책은 인간적인 모습이 탈각되거나 미화된 영웅담과는 달리 한 여인의 생생하고도 고독한 삶의 여정이 잘 버무려 담겨있다. 비극의 역할은 고통이 나에게만 처해진 조건이 아닌 인간 모두의 공통적인 조건임을 인식하고 ‘공감’이란 마음을 열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자서전은 비극의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을 그 걸음과 눈물로 지새웠을 고독한 그 밤들이 나의 발걸음과 밤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최미선 전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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