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
이 글은 2019-4-10 일 울산저널에 실린 서평입니다.
http://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4214111951
알비 삭스 저/ 김신 역/ 일월서각
“자매여, 비닐봉지가 신이 주신 갑옷은 되지 못하리라.하지만 이 야비한 땅에서, 그대는 살을 베어내고 피를 흘리면서 권력과 어둠의 통치자들, 그리고 악한 영혼들과 맞서 싸웠다. 그대의 무기는 침묵과 한 조각 쓰레기 뿐 이었다. 그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비닐봉지를 구해, 바지를 만들어 입은 그대의 모습은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주부의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대의 행동에 도리어 부끄러워 포획자들은 그대의 옷을 두 번 다시는 벗기지 못했다. 대신 그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우리는 포획자들의 키득거리는 입을 통해서 그대의 진실과 그대가 얼마나 용감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대의 용기를 기리는 비닐봉지는 이 세상 어디에나 널려 있다. 그 비닐봉지들은 거리 곳곳에서 바람에 날리고, 파도에 떠밀려 다니며, 가시덤불에도 걸려 있다. 그 비닐봉지들을 모아 이 드레스를 만들어 그대에게 바치나니 잘 가오. 투사여!”
남아공 인종차별에 반대해 무력 투쟁에 참여한 ‘필라’라는 여학생은 죽음의 순간에 파란 비닐옷을 입고 있었다. 보안경찰은 필라를 체포하여 함께 한 동지들의 이름을 대도록 며칠을 발가벗겨 놓았다. 필라는 자신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파란 비닐봉지를 구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다. 차마 보안 경찰도 이 비닐 옷만은 벗기지 못했다. 이는 후에 진실화해위원회에 당시 그녀의 고문에 참여 했던 보안경찰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죽음의 순간까지 동료들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용감했다고 전한다. 필라의 이야기는 ‘주디스 메이슨’이라는 예술가에 의해 ‘블루 드레스’로 재탄생 되었다.
남아공은 150년의 노예제도, 300년간 식민체제, 약 50년간의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나라이다. 1994년 남아공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되고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만해도, 국제 사회는 이 나라는 거대한 혼란에 빠질 것이고 헌법적 정의가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과 달리 남아공은 인간 존엄성, 자유와 평등, 정의에 대한 가장 진보적 사고가 굳건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 기저에는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며 체제를 정비해 나가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곳에서 만나게 한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컸다. 이 위원회는 인종차별정책하에서 발생한 반인권적, 반정의적, 폭력적 행위 가담자로 하여금 공개적인 석상에 나와 진실을 고백하게 하였다. 그 대가는 사면이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진실이 밝혀졌고, 객관적 사실이 주관적인 인식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다.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이 내 감정과 인식에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실로 국민적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물론 이 고백에 참여한 사람의 80%는 흑인이었다는 사실로 반쪽짜리 정책이었다고 하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조각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많은 치유가 일어났고 국민적 화해의 토대가 마련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저자 "알비 삭스"는 반인종차별주의 투사이자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그는 남아공이 어떻게 세계역사상 가장 평화적이고 진보적으로 과거청산과 입헌민주주의, 사법정의, 다문화공동체를 형성해 낼 수 있었는지를 이 책에서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깊은 울림을 준 한마디는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처럼 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