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기억 꿈 사상> 이 책으로는 두 번째 쓰는 후기다.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같은 책을 읽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감흥이 전혀 다르다. 내가 경험한 융 현상을 고백해야겠다. 현자 원형의 현현, 그림 그리기, 생생한 꿈.
융은 어릴 때부터 필레몬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필레몬은 원형으로 그의 무의식에서 창조한 현자다. 필레몬은 특별한 형태가 아니라 신화와 다른 이들에게서 노인, 은자, 현자 등으로 많이 등장하는 계통발생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융의 저서를 읽으면서 나도 이 현자의 현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현자는 '융'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의 책을 읽을 때면 딸에게 신화를 읽어주는 아버지의 목소리로 '융'이 내게 음성지원하는 듯한 착각이 매번 일었다. 또한 그의 저서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 그의 꿈의 내용은 마치 신기한 세계를 탐험하는 앨리스처럼 신기한 탐험을 하게 했다. 특히 어머니 죽음 전에 그가 꾼 늑대에게 쫓기는 꿈은 그 공포가 내 몸을 강하게 흔들었다.
"내가 보기에 하나의 믿음은 믿음의 현상을 증명할 뿐 그 믿은 내용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경험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융은 정신이 무너진다고 느낄 때는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통합을 상징하는 만다라를 그렸다. 그래서 무의식의 세계에 압도 당해 붕괴될 수도 있었던 자신의 정신을 지켜냈다. 나도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다. 융의 눈을 그리며 그와 교감하고 싶어 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림을 그려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는 벌써 도화지 두 권을 가득 채울 만큼 가득 그려냈다. 퇴근 후 저녁 12시부터 1~2시까지는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이것으로 인해 삶이 뭐가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날 선 내 비판의 칼이 무디어진 것은 느끼고 있다.
그의 책 곳곳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꿈은 융에게 길을 보여주거나 곧 닫쳐올 죽음이나 사건을 예시하기도 한다. 융은 꿈을 지나가는 에피소드 정도로 여기지 않고 의식이 잠든 사이 활동하는 무의식의 현현으로 인식하고 그 분석에 힘을 쏟았다. 그의 꿈은 마치 내가 신기한 세계를 탐험하는 앨리스가 된 것처럼 신비로운 탐험을 하게 했다. 특히 어머니 죽음 전에 그가 꾼 늑대에게 쫓기는 꿈은 그 공포가 내 몸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래서 융을 읽은 융리안들은 절대로 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에게도 더욱 생생해진 여러 개의 꿈.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일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몇몇 꿈들을 감별해 낼 수는 있었다.
"나의 존재 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내가 찾아 헤매던 물음이 바로 나였다는 것. 물속 고기가 물을 찾아 헤매듯이 물음인 내가 물음을 찾아다녔다는 것. 나는 그저 온 힘을 다해 물음을 실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