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39년 5월의 그날 아침, 아테네 시내를 거닐어 본다. 봄날, 날은 맑고 따뜻했을 것이다. 늘 이 거리에는 젊은이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고 말하는 한 늙고 못생긴 철학자가 있다. 오늘 그 철학자가 재판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어쩌면 사형을 언도받을 수도 있는 그런 재판이다. 내가 만일 그 철학자라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까?
생의 아이러니
1.
내 나이 70, 아테네의 영광과 쇠락을 모두 보았다. 젊은 시절 누렸던 아테네의 영광은 이제는 무너졌고 아고라 광장에서 토론을 하던 나의 벗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위대한 페리클레스 장군은 전염병으로 죽었고 극작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도 세상을 떠났다. 아리스토파네스가 풍자했던 자유사상가들은 이미 추방되었거나 처형당했고 이제는 내 차례가 되었다. 장군이며 나의 열렬한 추종자인 크세노폰은 페르시아 땅에서 용병으로 싸우고 있고, 한때 내가 총애했던 알키비아데스는 숱한 배신으로 실각했고 어느 타국 땅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피살당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건설한 위대한 건축가 페이디아스는 독살 되었고, 그리고 이제 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을 두렵게 하는 존재로 고소당했다.
2.
우리 아테네는 5년 전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패배로 인해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소중하게 여겼던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스파르타의 지지를 받는 30참주들이 9개월간 잔혹한 독재 권력을 행사했다. 정말 끔찍한 시기였다. 그 시기에 약 1500명의 아테네 시민들을 처형당했고 수 천 명의 시민들이 아테네에서 도망쳤다. 나에게도 살라미스에 가서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잡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에 응하지 않았다. 이 정권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나도 역시 그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3.
다행히도 4년 전 민주주의자들이 군대를 만들어 참주를 쫓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후 대사면령을 내렸다. 한 때 에게해를 지배했던 위대한 제국과 막강한 함대는 사라져버렸고 튼튼한 성벽은 스파르타에 의해 무너지고 경제도 형편없어졌으며 주민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아테네는 이제 희랍에서 더 이상 무적의 지도자가 아니다.
4.
젊은 시절에 나도 아테네의 영광을 위해서 보병으로 물러서지 않는 전투를 했다. 그 전쟁의 명분이 비록 어처구니없는 것일지라도 명령을 받은 이상 죽음이 두려워 물러서지는 않았다. 옆에서 전우들이 칼에 찔리고 목이 달아나고 팔다리가 끊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국가의 의미를 고찰했고 인간의 의미를 고찰했다. 국가의 기초는 인간이다. 인간이 무지에서 해방되어 올바름이 무엇인지 안다면 올바른 행위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질문을 해 대었다. 그것이 사람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그 불편을 감내하지 않으면 무지를 벗어날 수 없다. 무지를 벗어난 인간이 무지를 벗어난 국가를 구성한다.
5.
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었다. 아테네는 과두정의 두려움 때문에 눈에 띄는 사람들을 희화화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 희극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보았고 현장에서 일어나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다. 희화화 된 나의 이미지가 나의 본질인양 오도되고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적들을 가지게 될 줄은.
6.
나는 글보다 말을 사랑한다. 글은 스스로 설명도 대답도 할 수 없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책임이 없고 일방적이다. 그러나 말은 얼굴을 맞대며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는 쌍방적인 것이다. 나는 정직하고 짧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말도 정직성이 결여되면 큰 무기가 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우리 도시에 말을 하는 기법인 수사법을 가르치던 소피스트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위험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러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꽃 필 무렵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말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한 소피스트들은 말의 중요성과 설득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말이 진리를 오도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잘못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했고 그로인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고 피해야 할 일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이 가르치는 윤리적 상대주의, 종교적 회의주의는 우리에게 상당한 두려움과 분노를 일으켰다
7.
그나저나 나를 밀고한 사람은 밀레토스, 아뉘토스, 리콘 세 사람이다. 멜레토스는 젊은 시인으로 나이가 서른다섯 쯤 되었다고 한다. 이 젊은이는 과연 아테네의 젊은이에게 관심이나 있었나? 젊은이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나 해봤을까? 아뉘토스는 공방을 운영하는 무두장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참주 체제 때 아테네를 떠났다가 민주주의 세력과 함께 다시 돌아온 인물이다. 참주정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 원한이 많은 인물이다. 그런데 참주 중한 사람인 ‘디온’은 내가 총애하는 플라톤의 외삼촌이다. 그는 정말 욕망만 있는 돼지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나를 그들의 무리 중 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리콘은 웅변가이다. 나는 대중을 상대로 거짓을 진실로 보이게끔 하는 연설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웅변가인 그는 나를 왜 고발했을까? 그들 셋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알기나 할까?
8.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일지도 모른다. 죽음,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무로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이든 내 나이면 가야할 때가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그 어떤 곳이든 가볼만한 곳이다. 무로 사라진다면 편안한 휴식이 될 것이고, 다른 세계로 간다면 그곳에서 많은 위인들과 검토하는 삶을 살 것이다.
9.
그러고 보면 내 인생도 참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나는 소피스트처럼 돈을 받고 남을 가르치지 않았건만 남을 가르친 죄목으로 고소당하고, 자신의 혼을 돌보라는 윤리적인 원칙을 강조했건만, 사람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고소당하고, 신의 사명을 다해 아테네를 깨우는 등에를 자청했건만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경죄로 기소를 당했다. 어쩌면 이 길은 죽지만 죽지 않는, 살지만 살지 않는 마지막 아이러니가 작동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