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2500여 년 전 축의 시대부터,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인류는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해 진지한 탐색을 한다. 한 개인의 의지로 어찌해볼 수 없는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힌 삶의 조건들에 대한 탐색이다. 그 속에서 과연 우리는 ‘선택’이라는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까?
태어나면서 우리는 모두 어찌해볼 수 없는 조건 지어진 삶 속으로 던져진다. 나의 의도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삶에 툭 내던져진다. 온 힘을 다해 헤어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삶의 조건들은 더욱 옥죄어 올뿐이다. 이 옥죄어 옴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더욱 뚜렷이 보인다. 한발 내디딜 힘도 낼 수 없는 비극 속에서, 이러한 삶의 ‘조건 지어짐’을 뚜렷이 만난다.
어느 누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기를 원하겠는가?
‘조건 지어짐’은 결코 한 개인의 탓만이 아니다.
결코 자책으로 혹은 죄책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발목을 붙잡고 있던 조건들을 숙고했을 때, 조금씩 자책과 죄책감에서 풀려나기 시작한다.
비로소 한 발 내디딜 힘을 내본다.
그리고 같은 조건들 속에서 힘겹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본다.
그들도 나도 모두 얽어매어져 있구나!
그들의 조건에 처했더라면,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조건 지어진 삶’에 대한 숙고 속에서 비로소 우리라는 연민과 연대가 생긴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걸음을 뗄 수 있다.
이렇듯 비극은 우리에게 ‘조건 지어진 삶’에 대한 통찰과 그 조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웃에 대한 연민을 일으킨다. 그래서 아테네가 비극을 통해서 시민의 통합을 노렸다는 것은 유효하다.
오이디푸스를 읽으며, 나와 나의 이웃을 연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