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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살린 Jul 15. 2020

3. 어머니의 냉장고

과잉과 결핍

* 어머니의 냉장고


새벽에 일어났다. 화가 났다.

냉장고, 저 냉장고가 문제다

음식과 봉지로 빈 틈이 보이지 않는 저 냉장고 때문에 화가 나서 더 잘 수가 없다.


정리 정돈을 배우면서 나타나는 발작 증상이다.


냉동실을 열었다.

언제 넣어 두었는지 알 수 없는 떡들

떡 밑에 깔려 장작이 되어버린 고등어

봉지 봉지 담아 둔 깻잎 김치 15 봉지

만두 속 재료가 5 봉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풀들


냉장실을 열었다.

장아찌와 김치, 반찬들로 역시 빈 구석이 없다.

주범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는 풀들만 보면 무치거나 삶거나 말려서 모두 먹을 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냉장고 속을 테트리스 하듯 꽉꽉 채워 넣는다.

 

간결하고 깔끔한 품위 있는 생활을 하려는 내게 저 복잡한 냉장고가 걸림돌이다.

화가 아주 많이 난다. 화가..


잠깐!!! 몽몽아!!!  니 처지를 알라.

넌 백수다.


일용할 먹을거리 앞에서 감히 화를 낼 처지가 아니란 말이다.

저 정도 식량이면 1년을 시장과 마트를 전전 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아껴먹으면 2년도 가능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선 일단 차분히 어머니의 일생을 돌아보자....

새로운 개체로 거듭나기로 했으니, 이 갈등도 다르게 풀어보자


어머니는 언제부터 저렇게 물건을 비축하게 되었나?

한 많은 보릿고개 시대를 살아낸 어머니

결핍이 일상화되고 내면화되었던 시대였다.

그 시절에는 물건의 비축이 미래를 위한 저축이었고,

비축 실력이 살림하는 미덕이었다.


오.. 어머니가 이해되고 있어...


어머니는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라떼는 배추 하나로 열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고...

그런데... 지금도 냉장고만 열면 그 열 가지 반찬이 있다.


냉장고 정리에 나섰다.

어머니를 탓할 게 아니었다.

내가 쓰던 양념 재료가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었고

내가 먹던 간식이 화석이 되어 있었다.


화는 결국 나의 게으름으로 향한다.

냉장고는 나의 냉장고가 아니던가!!

불행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노예근성이 아직도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공간이 생긴 냉장고




* 언제부터 미니멀을??


난 언제부터 미니멀을 표방했을까?

학교와 직장문제로 잦은 이사를 해야 했다. 그때마다 물건들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러다 이사와 이사 사이에 기간이 맞이 않아 짐을 시골집에 두고 생활했을 때, 아무런 어려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때 맡겨놓은 짐은 여전히 풀지 않고 시골집에 있다. 쓸모없이~~~


서구권에서는 조슈아 필즈 밀번라이언 니커디머스가 자신의 짐을 정리하며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미니멀 라이프가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면서 물건의 가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주인공은 비움으로써 소유한 물건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가진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사키 후미오, 일본의 극단적 미니멀리스트다.

그가 덩그러니 집 안에 앉아있는 사진은 내겐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 밖에

사사키도 죠수아와 라이언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소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고..

두 남자의 미니멀라이프
사사키 후미오의 방



쇼핑을 싫어하는 나의 게으름과 미니멀 라이프는 잘 맞았다.

일단 버려야 한다는 것 빼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 빼고,,,

그리고 청소해야 한다는 것 빼고


몽몽아!!! 청소기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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